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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선희의 밑줄 긋기] 알파고가 어디 있나요

등록 2016-03-17 18:14수정 2016-03-17 18:42

“알파고 때문에 중3 학부모들이 대혼란에 빠졌대요.” “그렇겠지. 자식들이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되겠지.” “아니, 아이를 알파고에 보내야 하는데, 어딨는지 몰라서.” 후배와 함께 박장대소했다. 그런데 한국 학부모들,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한겨레>가 17일 시작한 ‘학생부의 배신-불평등 입시 보고서’ 시리즈를 보면 올해 서울대 입학생의 49.1%는 특목고, 자사고, 강남 3구 소재 일반고 출신이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입학까지 든 사교육 비용이 엄청날뿐더러 등록금도 일반고의 세 배 이상이다. 강남 3구 일반고에 가려면 일단 강남에 살 수 있는 부동산 비용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고소득 가구 학생들이 이런 학교들에 주로 진학하게 되는데, 이는 서울대 등 소위 ‘명문대’ 입학으로까지 이어진다.

교과성적, 수능은 기본.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독서 목록 등 ‘비교과’에 자기소개서와 면접까지 요구하는 입시제도는 고소득 계층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1학년 때는 국립대 치대병원 교수와, 2학년 때는 국방 전문가와 함께 연구를 하고 소논문을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학교, 1주일에 55만원짜리 대치동 면접학원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반영한 인사말을 준비해라” 같은 팁을 배우고, “자기소개서에 마침표와 쉼표를 어디에 찍을지까지 첨삭해주는 학원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부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어떤 교육과정도 대학 가기 위한 수단으로 바꿔내는, 어떤 입시제도도 사교육의 용광로 속에 녹여내는 한국 학부모들의 능력은 이미 20여년에 걸쳐 검증돼왔다. 이 기간은 한국 사회의 소득격차가 커지고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기간과 일치하기도 한다. 사회적·기술적 요인들로 승자독식 현상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자신이 누리는 것을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는, 최소한 더 아래로 내려가게 할 수는 없다는, 상류층과 중산층의 욕망은 점점 강렬해지는 듯하다.

알파고의 나라라며 갑자기 창의적 교육의 대명사가 된 영국은, 자녀의 소득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아버지의 소득인 나라다. 영국 중간계급(고소득 전문직 계층)은 자식들을 최상의 학교에 보내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영국의 저널리스트 오언 존스는 전한다.(<차브>)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을 하고, 좋은 종교 계통 학교에 보내려고 가짜 신앙인이 되기도 한다. 과외교사도 고용한다. 존스와의 인터뷰에서 레이철 존슨(보리스 존슨 런던시장 여동생)은 “중간계급이 가장 잘하는 것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살아남는 거죠”라고 말한다. “A+를 12개 받고, 바이올린 8급에다가 유도도 파란 띠, 뭐 이런 식이에요. 항상 성공하게 돼 있어요.” 영국 고등학교 3700개 가운데 100개가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입학생의 3분의 1을 배출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소득불평등-계층 대물림-계층간 분리교육은 힘들게 제어하지 않으면 맞물려 돌아가며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할아버지의 재력도, 부모가 정보력을 갖출 시간도 없는 처지에서는, 그래서 자꾸만 이런 대목들에 눈길이 가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사회에 대해 보편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하고 언제든지 새로운 걸 학습할 수 있는 능력, 즉 머리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넓은 시야와 머리의 유연성은 엄마가 대신 키워줄 수 없다. 아이 스스로가 내부 동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언론 인터뷰) 그런데 넓은 시야, 머리의 유연성, 내부 동기를 키워주겠다는 학원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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