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문학진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제정 취지 역시 ‘문학은 한 나라 문화예술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와 육성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학·학회·문학인 등 민간 영역의 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더욱이 영화·만화·음악·공예 등 다른 장르의 경우에는 별도의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경우에도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이 제정되어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학분야에 대해서도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 국가 차원에서 지원함으로써 문화예술 창달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설립되는 국립한국문학관은 모든 문학적 자산을 총괄하는 구심점이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우리나라 문학유산의 계승 발전과 창조의 핵심기관이 될 것이기에 법률 통과와 함께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3만3000㎡ 이상의 설립 터를 제공하면서 한국문학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과연 한 국가의 국립문학관이 들어설 만한 명분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느냐일 것이다. 다른 시설도 아닌 국립문학관이야말로 한국 문학의 정신과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 한국 문학인들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샹젤리제 거리만큼이나 생제르맹 거리의 레되마고 카페와 드 플로르 카페를 찾아가는 것도 그곳이 생텍쥐페리와 카뮈의 아지트였기 때문이다. 독일을 방문해 괴테의 생가와 하이네의 생가를 둘러보는 것도 그래서다.
서울 은평구는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숭실중학교가 있고 시인 정지용과 소설가 최인훈이 살았던 점을 들고 있고, 전북 군산은 소설가 채만식과 시인 고은을 배출한 도시로, 대구는 시인 이상화와 현진건 등을 배출한 도시이자 소설가 이문열과 김주영의 고향이 대구 인근임을 들고 있으며, 김유정의 고향인 춘천은 강원도 영서지역에 펼쳐져 있는 만해마을과 시인 박인환 문학관 등을 연계한 문학벨트 조성을 이유로, 경기도 파주시는 출판단지가 있는 책의 도시임을, 또 오래전부터 시민독서운동을 펼쳐온 점을 들어 군포는 군포야말로 책의 도시임을 강조하고 있다. 모두 나름대로 이유와 명분이 있다.
그러면 이런 곳은 어떤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을 쓴 김시습의 기념관이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허균과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이자 뛰어나 경세가이자 사상가며 문장가였던 이율곡과 신사임당이 태어난 곳으로, 실제로 문학관이 지어질 장소 역시 강릉 경포호수와 바다 사이에 있는 허균·허난설헌 생가 마을에, 호수 이쪽 건너편에는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이 자리잡고, 저쪽 건너편엔 김시습 기념관이 보이는 곳에 세운다면 독일로 비유하자면 괴테의 생가 마을 이상의 상징과 같고, 프랑스로 말하면 생제르맹 카페거리 이상의 상징이 있지 않겠는가. 이런 곳보다 더 문학적 상징이 있는 도시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그 도시의 축복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가적 축복이자 한국 문학의 축복일 것이다.
어떤 도시는 그 도시를 방문한 대통령에게 시장이 한국문학관 유치를 말씀드렸다고 한다. 이제는 드디어 문학에 관계된 일까지도 정치적 논리로 가고 힘의 논리로 가자는 것인가. 정말 그래서는 안 될 일이기에 이 원고를 쓴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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