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4일 제조업체인 옥시로부터 뒷돈을 받고 유리한 실험보고서를 써준 혐의로 서울대 교수를 긴급체포했다. 연구자의 행태도 놀랍지만, 역학조사 결과를 뒤집겠다고 뇌물도 서슴지 않은 기업의 비윤리적 행동에 거듭 아연하게 된다. 엄히 조사해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피해의 책임이 기업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의 안이한 대처도 피해 발생과 확산의 큰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응당 해야 할 예방조처를 하지 않고, 피해 발생 뒤에도 본격 수사와 피해 구제를 미루고, 책임을 서로 떠넘긴 것이 바로 정부다. 직무 태만인지, 아니면 기업의 접근 따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초동 조처부터 실패했다. 2006년 첫 어린이 사망자가 보고된 뒤 2007년 여러 대학병원 의료진이 관심을 촉구하는 등 비슷한 사례가 잇따랐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소관 탓만 하며 손을 놓고 있었다. 감염병이 아니라면 유해 화학물질 노출을 의심하는 게 당연하고 폐 섬유화 등 의심할 만한 증상이 있었는데도 2011년 이전까지는 역학조사도 하지 않았다.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4~5년을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은 “2003년 무렵에는 유독물질에 해당할 정도의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란 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정부 스스로 인정했던 위험물질이었다. 그런데도 1996년 이 물질이 처음 생산됐을 당시 정부는 유해물질이 아니라고 분류했다. 2001년 옥시가 이 물질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했을 때도 안전 인증이나 검사는 없었다. 옥시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할 때도 아무런 확인을 하지 않았다. 10년 뒤인 2011년 환경부 역학조사로 PHMG 등이 폐 손상의 원인으로 밝혀졌지만, 정부가 이를 유해물질로 지정한 것은 2014년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관리·감독을 외면한 이유가 무엇인지, 업체에 독성검사 자료 제출조차 요구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피해 확인 뒤 신속한 조처를 미적댄 이유가 무엇인지 등은 지금이라도 규명돼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밝히는 일은 제조사에 대한 수사 못지않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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