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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분노의 연대 몰고 온 ‘여성혐오 범죄’

등록 2016-05-19 20:10수정 2016-05-24 14:30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23살의 여성이 잠깐 화장실에 갔다가 처음 본 남자의 칼에 살해당했다. 남자는 아무 여자나 죽이겠다며 화장실 안에서 범행 대상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17일 오전 1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부근 노래방 건물에서 벌어진 일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 시간에 그곳에 없어서 다행히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엔 내가, 혹은 내 딸이 어디에선가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격렬한 공포가 밀려온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무자비한 폭력의 대상이 됐으니, 혼자만의 비극이나 특이한 개인의 일탈로 넘길 일이 아니다.

살인 피의자는 경찰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피의자에게 조현증 병력이 있어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는 어렵다지만, 처음부터 여성을 겨냥해 죽이려 했다는 것이니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냥 ‘마주치는 아무나’가 아니라 ‘여성 중 아무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여성 혐오 범죄와 다름없다.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라는 말은 지금껏 무수히 벌어진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살해에서 거듭 내세워졌던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여성 혐오 실태는 이미 크게 걱정할 수준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온갖 종류의 여성 비하 표현과 혐오감을 담은 글이 크게 늘었다. 입시나 취업 등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일부 남성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탓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병적인 증상인 것은 분명하다. 사회적 불만과 대중의 절망을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해 적대감과 혐오를 키우는 잘못된 풍토가 번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 터다. 그런 공격본능과 혐오감을 실제로 여성에게 표출하는 것이 곧 여성 혐오 범죄다. 이번 사건은 여성 혐오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사건 뒤 강남역 10번 출구의 벽이 추모 쪽지로 뒤덮이고 인터넷에 추모의 물결이 크게 이는 것도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가 그만큼 큰 때문이겠다.

그런 두려움을 여성들이 계속 떠안고 있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 행위에 대해서는 함께 분노하고 결연히 맞서야 이를 막을 수 있다. 혐오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방지대책 등 사회적 해결도 당연히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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