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23살의 평범한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뒤 나온 추모 문구의 하나다. 분노와 공포로 공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응축됐다. 어떤 여성이든 ‘그런 일은 나와는 상관없어’라고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 앞에서, 여성들이 소리를 모아 ‘여성혐오’를 고발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을 뭐라 부르든, 그런 폭발적 반응은 여성혐오라는 병증의 심각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분노와 공포는 당연하다. 지금의 여성혐오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의 위험한 변종이다.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익 향상이 중요하다는 담론은 상식이 됐지만 정작 사람들의 인식과 실제 여성들의 현실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진작부터 있었다. 20·30대 여성들은 그 괴리를 실감할 터이다. 아들과 딸을 차별해 교육하지 않는 부모 세대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가부장적 억압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자란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사회에 진출하면서 여전한 차별의 현실에 분노하게 된다.
현실의 이런저런 차별보다 더 두려운 것은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여성혐오다. 20·30대 여성들이 가부장적 질서와 성차별을 더는 당연한 일로 용인하지 않게 된 데 반해, 같은 세대 남성들의 양성평등 인식은 그 앞세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문화적 지체에 더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의 압력과 그로 인한 남성들의 분노와 열패감이 엉뚱하게 여성에게 전가된다. 군 가산점 논쟁이나 온갖 여성 비하 표현이 그런 예다. 보호 대상으로 여겨 무시하고 차별하던 기존의 여성차별이, 공격과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 적대하고 경멸하는 여성혐오로 변질된 것이다. 혐오가 공격성을 띠면 위험하다. 많은 여성들이 이번 사건에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여성혐오의 공격성이 실제 폭력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겠다. 이는 남녀갈등 따위로 치부할 문제가 이미 아니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격발된 여성들의 항의는 여성운동 조직이나 전문가들 주도가 아니라 관심의 공유를 통해 스스로 각성한 일반 여성 대중의 자발적 분노 표출이란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힘은 그만큼 커졌다. 침묵해온 정치권을 비롯해 온 사회가 지혜를 모아 응답해야 할 때다.
이슈강남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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