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합니다.” 지난해 12월13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국민성장포럼에서 한 연설이다. 선거에서 이겨 대통령이 되었는데, 첫 고위 공직 인사에서 이 ‘5대 원칙’ 적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여야가 처지를 바꿔 가며 ‘내로남불’하는 일이 없게 이 5대 원칙을 적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로봇 검증’을 하면 어떨까? 시사점을 주는 흥미있는 연구가 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조교수 리사 셰이 등 4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2013년 자동차 속도위반 딱지를 자동 발행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 한 시간 남짓 달린 자동차 운행 기록과 제한속도 수치를 프로그래머들에게 제공했다. 52명의 프로그래머를 세 그룹으로 나눠 첫번째 그룹에는 법 조항의 문구에 충실하게, 두번째 그룹에는 법의 취지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했다. 세번째 그룹에는 딱지를 떼는 구체적인 조건을 미리 제시했다. 자동차는 한 시간 남짓 달리는 동안 잠깐씩 제한속도를 넘겨 달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25분간의 자동주행 모드에서도 제한속도를 넘긴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고는 없었다. 프로그램들은 몇 장씩 딱지를 끊었을까? 세번째 그룹(18명)이 연구자들이 제시한 기준을 적용해 만든 프로그램들은 딱지를 하나도 끊지 않았다. 두번째 그룹(18명)이 법 제정 취지에 맞춰 만든 프로그램들은 평균 1.5개의 딱지를 끊었다. 그런데 첫번째 그룹(16명)이 ‘법 조항 문구에 충실하게’ 만든 프로그램들은 평균 498개나 되는 딱지를 끊었다. 문구에 집착한 법 적용과, 법 취지를 중시한 법 적용은 이렇게 차이가 컸다. 문 대통령이 말한 ‘5대 비리’ 가운데 적어도 4가지는 프로그래머들에 따라 해석이 천양지차일 것이다. 엄격하게 해석하자면 이렇다. 살고 있는 집을 놔둔 채 새로 개발되는 지역에 또 집을 사서 임대료만 받고 있는 것도 투기라면 투기다. 기타소득이 있는 근로소득자가 종합소득세 신고를 모르고 넘어갔다면 세금탈루다. 외국에 오래 나가면서 주민등록을 말소하지 않고 친척집에 주소를 둬도 위장전입이다. 자신이 쓴 책의 일부 내용을 출처를 표시하지 않고 논문에 실어도 표절은 표절이다. 이렇게 거르는 게 인사검증 취지일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인사검증 과정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참으로 많은 의혹이 뚜렷한 근거 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국민으로서 의무를 회피하거나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그런 목적으로 한 일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부인의 취업 특혜 의혹을 상임위 차원에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며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자, 후속 청문회까지 한때 파행으로 몰아갔다. 우리나라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17년 됐지만, 청문회 운영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 여전히 부끄럽다. 물론 여야가 충돌한다고 싸잡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검증 과정을 거친 뒤 국민이 반대하는 인사를 대통령이 무리하게 임명하려는 경우와, 국민이 찬성하는데 야당이 발목 잡는 경우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청문회를 하는 국회도, 검증 보도를 하는 언론도 궁극적으로는 공론을 살펴야 한다. 아무 문제 없이 한 시간 차를 달린 운전자에게 차를 팔아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벌과금을 물리는 ‘벽창우 로봇’이 하는 듯한 인사검증은 이제 졸업할 때가 되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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