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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제천 유족의 간절한 바람 ‘안전한 대한민국’

등록 2017-12-24 18:04수정 2017-12-24 19:40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복합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충북 제천시 제천체육관 안 유가족 대기실 천막 앞으로 희생자 사진과 추모 문구가 적힌 종이 등이 붙어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복합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충북 제천시 제천체육관 안 유가족 대기실 천막 앞으로 희생자 사진과 추모 문구가 적힌 종이 등이 붙어있다. 제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살아 있었다면 함께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겼을지 모를 터이다. 사흘 전 발생한 화재참사의 희생자 영결식이 열린 24일, 충북 제천엔 온종일 슬픔처럼 비가 내렸다. 진눈깨비 같기도 했다.

세 아이를 키우며 학교 급식실 일에 우유·신문 배달까지 뛰어들었던 ‘슈퍼우먼’ 엄마, 수능을 치른 손녀까지 모처럼 모여 사우나를 찾았던 다정한 할머니·딸·손녀 3대,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합격한 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겠다며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왔던 학생….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난 29명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할 때마다 ‘만약’을 되뇐다. 만약 2층 여성사우나 비상구가 물건으로 가려져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렇더라도 만약 비상구 유도등이 켜져 있었다면, 만약 구조대원 수가 좀 더 많았더라면, 그래서 만약 2층 통유리를 빨리 깼더라면.

어이없는 참사 앞에서 우리가 ‘만약’을 되뇌는 것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만이 떠난 이들에 대한 산 자의 최소한의 도리요 예의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천 유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희생자 유족 대표 5명은 23일 저녁 제천체육관에서 한 브리핑에서 “초기 골든타임을 놓친 이유는 소방 장비·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안전하고 사람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불탄 흔적이 거의 없는 2층을 눈으로 직접 보고 왔으니 얼마나 울분이 터졌겠는가. 소방당국의 초동 대처와 구조 실패에 대해 이들의 비판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좋은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며 “저희가 누굴 처벌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고도 말했다.

이번 참사엔 그동안 누누이 지적돼온 구조적 문제점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건물의 불법 증개축과 값싼 외장재 사용, 비상시엔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인 비상구, 소방차 진입을 방해하는 불법주차, 제때 가동 않는 고장난 소방장비까지… 우리 사회 안전불감증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 또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비용과 편의보다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근본적 변화가 매뉴얼이나 시스템으로, 일상생활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유족들의 호소대로, 열악한 소방환경에 대한 대책도 더 이상 미룰 순 없다. 29명의 사망자와 36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화재 현장에 애초 투입된 구조대원은 4명에 불과했다. 불길을 진압하며 에어매트를 설치하는 한편 건물로 진입해 사람들을 구해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력이었다. 현재 소방공무원 수는 소방기준법이 정한 최소한 인력배치 기준에도 크게 미달한다. 그런데도 지난 추경예산 논란 과정에서 보듯, 소방관이나 재난안전요원 증원은 ‘공무원 철밥통 증원’ 프레임에 걸려 번번이 축소되거나 지방재정예산으로 미뤄지기 일쑤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3일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정권을 잡은 세력이 세월호보다 더 잘못 대응해 사상자를 키웠다”고 한 건, 그래서 더 어이가 없다. 가장 비통한 유족과 평범한 시민들까지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근본 변화를 강조하는 지금, 제1야당 대표가 한다는 일이 고작 정치적 공세라는 현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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