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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햇발] ‘통일 시대’의 재구성 / 백기철

등록 2018-01-30 17:46수정 2018-01-30 18:57

백기철
논설위원

국가대표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분투를 그린 영화 <국가대표 2>에는 남북한 대표로 맞붙는 북한 자매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를 따라 탈북한 언니와, 불가항력으로 혼자 남겨진 동생이 빙판에서 조우한다. 둘은 몸을 부딪히며 겨루는데, “변절자”라는 동생 외침에 언니는 “빙판 위에 언니 동생이 어딨네, 인민 대표가 그것도 모르네”라고 울부짖는다.

<국가대표 2>에는 2003년 아오모리 겨울 아시안게임부터 시작된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애환이 잘 담겨 있다. 영화에선 2003년 남북이 비기지만, 실제로는 남한이 0 대 10으로 졌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4월 북한을 3 대 0으로 이겼고, 앞서 2월엔 매번 크게 졌던 중국을 3 대 2로 제압했다. 영화만 봐도 단일팀이 대표팀에게 얼마나 상처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단일팀 논란은 어쩌면 남북관계에 이정표가 될 것 같다. 통일이 지상과제이고,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정언명령이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부르던 시절이 흘러가고 있다. 분단 70년에 남북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기보다 뿌리는 같지만 이웃한 형제 나라처럼 돼가고 있다.

단일팀 논란으로 드러난 2030의 현실인식은 586과 많이 다르다. 586이 분단의 고통에 천착한 세대라면, 2030은 민족보다 남한 내 계급모순, 격차에 더 민감하다.

통일에 무덤덤한 세대의 등장은 통일대박론이나 평화통일론 모두에 도전이다. 둘은 방법은 다르지만 통일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요즘 같아선 한반도 운명이 어느 한쪽 시나리오대로 될 것 같지 않다. 역사에 반복이 없듯 상상하지 못한 길이 앞에 놓여 있을 것이다.

단일팀·공동입장을 두고 사람들은 차라리 남북이 태극기와 인공기를 각자 들고 나서는 게 낫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단일팀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론 신중했으면 한다. 우의와 친선을 다지는 수단이 꼭 단일팀일 필요는 없다. 경평축구처럼 여러 종목에서 교류전을 하거나, 국제 스포츠 행사를 분산개최 할 수 있다. 물론 여건이 성숙한다면 단일팀을 못 할 것 없다. 적어도 국제사회에선 단일팀 효과가 상당하다.

과거 남북이 국제경기에서 대결하면 민족의 슬픈 운명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해지곤 했다. 이제는 북한 스포츠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차분히 지켜본다.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다.

시대의 변화를 애처로워할 필요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통일은 없는 것 아닌가 싶다. 통일 없는 통일시대, 통일 없는 남북한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론 586세대로서 하나된 민족, 하나된 한반도를 목매어 바라 마지않지만 이제 그 비원은 신기루가 돼가고 있는 것 같다.

남북이 어서 ‘쿨하게’ 경쟁하는 시대로 들어섰으면 한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경쟁하듯 남북이 경쟁하고 협력하는 선순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천문학적 국방비를 하루빨리 일자리가 없어 절규하는 청년들에게 돌려야 한다. 북한 인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영화 <국가대표 2>에서 남북 자매는 경기 뒤 공항에서 만나 오열한다. 언니 말처럼 빙판에선 언니 동생이 없지만 그래도 둘은 뜨거운 피를 나눈 형제였다. 영화는 둘이 또 다른 빙판에서 미소 지으며 대결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남북의 자매들은 이번엔 우여곡절 끝에 빙판에서 하나가 됐다. 남북 대표팀 선수들은 훈련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쳤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해 남북이 통일 없이 공존한다 해도 여전히 남북은 하나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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