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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 햇발] 왜소해져만 가는 일본 정치 / 고명섭

등록 2018-03-06 17:27수정 2018-03-06 19:07

고명섭
논설위원

일본은 경제력 규모 세계 3위, 군사력 규모 세계 7위의 대국이다. 하지만 일본 정치를 보면 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왜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의 탁월한 지도자도 찾기 어렵고 도덕적 권위로 국제적 존경을 받는 정치인도 보이지 않는다. 두 차례나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를 보자. 평창올림픽 개막을 전후해 아베가 보여준 언행은 3류 정치인이나 할 법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미 군사훈련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월권적인 발언을 했다가 ‘내정간섭 하지 말라’고 일침을 받았다. 한반도기를 든 남북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대국의 여유가 있다면 이렇게까지 협량하게 처신할 이유가 없다. 어리석은 자는 벽을 세우고 지혜로운 자는 다리를 놓는다는데, 아베가 보여준 것은 시종 벽을 세우는 데 골몰하는 모습뿐이다.

지난달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남북단일팀 입장에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뒤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손을 흔들고 있다. 오른쪽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내외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앉아 있다. 평창/연합뉴스
지난달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남북단일팀 입장에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뒤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손을 흔들고 있다. 오른쪽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내외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앉아 있다. 평창/연합뉴스
아베의 언행은 1990년대 말에 총리를 지낸 오부치 게이조와 비교하면 그 격차가 확연하다. 오부치는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전후 처음으로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하고,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시대’ 공동선언도 함께 했다. 그 시절 일본은 ‘동아시아 공동의 집’을 짓는 데 최소한 방해물 노릇은 하지 않았다. 2000년대에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도 조지 부시 대통령의 푸들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베만큼 편협하지는 않았다. 부시 생일잔치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냈던 고이즈미는 대범한 면도 있어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고 북-일 수교의 길을 뚫으려고 두 번이나 방북했다. 골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쫓아가다 나뒹군 아베는 트럼프가 ‘어느 체조선수보다 멋졌다’고 칭찬했다며 그 일을 오히려 자랑했다. 일본 정치는 과거에도 왜소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왜소해지고 있다.

그런 왜소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민주주의의 허약함과 빈곤함의 근본 원인을 ‘천황제가 낳은 무책임의 체계’에서 찾은 바 있다. 일본 국민이 정치적 책임 주체로 일어서지 못한 채 신민 의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일본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마루야마는 일본 사회의 특징을 ‘다코쓰보’ 곧 문어잡이 항아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항아리마다 문어가 한 마리씩 들어가 웅크리고 있듯이 각각의 사회집단이 공통의 연대 없이 집단 내부에 틀어박힌 것이 일본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마루야마가 이런 말을 한 것은 60년도 더 전이다. 그래도 그때는 진보적인 신문과 잡지의 영향력이 커서 항아리들끼리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네트워크의 중심 노릇을 했다. 근년에 들어와 일본은 이런 진보적 지식인·시민의 공통 언어를 담아낼 공간마저 위축됐다. 강력한 보수정치 세력의 힘을 억제할 대항세력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치는 이대로 가면 몰락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의 훼방꾼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려면, 일본 안에서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 같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주역은 변방 출신의 하급 사무라이들이었다. 지금 일본에 필요한 것은 에도 막부를 뒤엎은 그 젊은 지식인들의 패기다. 물론 그 패기가 가리키는 곳은 천황제의 깃발을 들고 군국주의로 치달은 150년 전의 지식인들이 간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어야 한다. 일본 국민을 주권자로 일으켜 세우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유신’이 도래하지 않는 한, 일본 정치에 드리운 어둠은 갈수록 짙어지고 왜소한 정치인들의 우경화 경쟁도 더 심해질 것이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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