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박정희 정권 때의 ‘1차 인혁당 사건’(1964년)과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74년)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권력자의 뜻에 따라 짜맞추기 수사가 이뤄졌고 광범위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중앙정보부가 밝힌 ‘북한 지령을 받은 반국가단체’ ‘국가변란 및 체제전복 행위’ 등의 혐의는 모두 부풀려졌거나 왜곡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인혁당 사건은 도예종 등 관련자 8명이 확정판결 하룻만에 사형이 집행돼, 우리 현대사에 ‘사법살인’이란 치욕적인 상처를 남겼다. 가해자인 국가기관이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것은 늦었지만 올바른 태도다. 재건위 사건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직권조사에서도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임이 일부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서 사형 집행의 최종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는 진전이 있었지만, 그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기엔 여전히 미진하다.
법원은 유족들의 재심 신청에 대한 판단을 2년 넘게 미루고 있다. 재심 요건을 완화하는 법 손질도 중요하지만, 사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사법 살인을 방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때문이다. 마땅히 재심을 받아들여 완전한 사법적 명예회복의 길을 터줘야 한다.
민청학련 관련자는 대부분 민주화 운동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인혁당 관련자는 여전히 반국가단체 가입 혐의를 쓰고 형극의 세월의 보내고 있다. 사형을 면한 5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도 여생이 얼마 없다. 30년여 동안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속에 살아온 유족들의 고통은 헤아리기 어렵다. 정부는 “국가 차원의 적절하고 신속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과거사위의 판단에 귀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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