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9일 결국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소환엔 불응한 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외로 나가려다 출국금지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언론에 등장한 지 49일 만이다. 이날 검찰에는 예상보다 담담한 모습으로 나왔으나 이 사건은 아마도 검찰 사상 가장 치욕적이고 엽기적인 비위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성추문 자체도 그렇거니와 영상까지 나돌면서 검찰 고위층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각이 온 국민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이 사건은 김 전 차관의 성범죄나 뇌물 혐의뿐 아니라 청와대의 수사 방해와 검찰의 부실수사까지 검경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이하 수사단)은 검찰의 초기 부실수사까지 온전히 드러내고 국민들의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마땅하다.
수사단은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에 적잖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윤중천씨는 지금까지 6차례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으면서 김 전 차관에게 건넨 뇌물성 자금 등에 대해 진술을 남겼다. 승진 청탁에 쓰라며 500만원을 봉투에 담아 건넸고 별장에 걸려 있던 1천만원 상당의 서양화도 줬다고 한다. 2007년 서울 목동 재개발 때는 집 한채를 달라는 요구도 받았을 정도로 사실상 스폰서 노릇을 해온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범죄가 발생 시점과 액수 면에서 공소시효의 벽에 부딪혀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범죄 액수가 1억원이라 시효가 15년인 제3자 뇌물 혐의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성범죄 피해 여성 중 한명인 이아무개씨의 폭로를 막기 위해 김 전 차관이 2008년께 윤씨에게 이씨를 상대로 한 1억원 반환 소송을 취하하도록 했다는 의혹이다. 수사단의 분발이 필요해 보인다.
김 전 차관은 이날 조사에서 성범죄와 뇌물수수 등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을 보고도 검찰은 초기에 계좌 추적이나 통신 조회 등 기본적인 수사조차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니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는 동영상이 공개됐는데도 그는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때의 실세 법무차관을 배려한 것인지, 또 다른 외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책임은 검찰에 있다. 이제라도 엽기적인 성범죄는 물론 부실수사의 진상까지 모두 밝혀 검찰 스스로 결자해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