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피해 어린이가 부모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에스케이케미칼과 애경산업이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 두 회사는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의 제조·판매사다. 가습기메이트로 인한 피해자는 1475명으로 옥시 다음으로 많다.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제품을 팔아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기업들이 자발적 피해 배상에 나서기는커녕 정부의 피해 구제까지 막으려 했다니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서울시청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를 개최했다. 특조위는 에스케이케미칼과 애경산업이 협의체를 만들어 2017년 10월18일과 11월1일 개정안 저지 대책과 정부 움직임 등을 논의한 회의록을 공개했다. 회의록에는 구체적으로 “현재 김앤장에 개정안 내용을 비판하는 의견서 작성을 요청한 상태로, 야당 측 의원 등에게 적어도 올해 안에는 법률이 통과되지 않도록 지연시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고…”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는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리 개발을 맡기고 야당 의원들에게는 로비를 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2017년 9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피해구제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으나 개정안은 1년이 지난 2018년 7월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가해 기업들이 모의한 대로 진행된 게 아닌가 의심된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회의록에는 “일부 보수 매체를 선정해 개정안에 대한 비판 기사 보도될 수 있게 조치, 개정안에 대해서 100% 찬성은 아니라는 분위기 조성 필요”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보수언론을 활용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개정안에 대한 여론을 호도하려 했던 것이다.
또 에스케이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검찰과 정부 내의 구체적인 움직임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록에는 “새로 부임한 형사2부 박OO 부장검사는 검찰 동향 모니터링 중이기는 하나 공정위로부터 자료 등을 받은 것이 없고 당장 조치 취할 계획은 없다고 함”, “살인죄 등 명백한 죄가 성립되지 않는 죄책은 무혐의로 종결하고, 나머지 부분은 환경부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로 처리할 예정” 등의 내용이 나와 있다. 가해 기업들이 이렇게까지 검찰과 정부의 동향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에 공식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지금까지 6476명이며 이 중 1421명이 사망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날 청문회에도 피해자와 가족들이 나와 고통을 호소하고 가해 기업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성토했다. 피해자들이 충분한 배상을 받고 가해 기업들에 철퇴가 내려질 수 있도록 특조위가 철저히 조사해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전모를 밝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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