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화성연쇄살인 5차 사건이 일어난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30년 전 모방범죄로 결론이 나서 범인까지 체포됐던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수사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섣불리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당시에도 고문수사 주장이 제기되는 등 미심쩍은 정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실이라면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20년이나 옥살이를 한 셈이 된다. 경찰은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재조사를 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지난달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드러난 이아무개씨는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뒤늦은 진실의 고백인지, 영웅심리나 자포자기에 따른 허위인지 아직 알 수는 없다. 하지만 1988년 9월 발생한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아무개씨가 항소심에서 고문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을 주장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일관되게 억울함을 호소해온 것으로 알려진 만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상황임은 분명하다.
여중생이 성폭행 뒤 살해당한 8차 사건의 경우 재갈을 물리거나 옷으로 묶는 방식이 아니었고 야외가 아닌 집 안에서 이뤄진 범행이란 점 등 그때까지 연쇄사건과 다른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모방범죄’로 본 경찰은 당시 피해자의 시신에서 발견된 체모를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으로 분석해 용의자 중 윤씨를 범인으로 체포했다. 혈액형도 윤씨의 것과는 일치하지만 이씨의 것과는 달라, 당시 이씨는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적 수사기법’이라 했던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은 이제는 쓰이지 않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기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잖다. 경찰과 검찰은 물론 재판부까지 소아마비를 앓던 윤씨가 담장을 넘어 어떻게 범행을 했다고 본 건지, 윤씨가 주장한 알리바이를 왜 인정하지 않았는지도 수사기록이 공개되지 않은 현재로선 의문이다.
윤씨는 재심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재조사는 불가피하다. 모든 증거물이 폐기됐을 것으로 보여 물증을 통한 검증이 쉽지 않고 공소시효도 지났지만, 그래도 진실은 밝혀야 한다. 윤씨 외에도 화성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범인으로 몰렸다가 이후 목숨을 끊은 이들이 4명이다. 경찰이 끈질기게 화성연쇄살인사건을 푼 노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과거 잘못된 수사로 인한 희생이 있다면 명백히 밝혀내고 사죄하는 게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