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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재용 재판’에 ‘이건희 신경영’이 왜 나오나

등록 2019-10-27 19:06수정 2019-10-28 02:3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5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1부)가 한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지난 8월 이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2심을 깨고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심과 달리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경영권 승계의 도움을 기대하며 묵시적 청탁과 함께 뇌물을 줬다고 봤다. 뇌물 액수와 횡령 금액도 삼성이 최순실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 등이 추가돼 36억여원에서 86억여원으로 늘어났다. 이 부회장이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파기환송심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런 마당에 정 부장판사가 재판 말미에 엉뚱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놨다. 그는 “이번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먼저 분명히 해둔다”고 운을 뗀 뒤 “1993년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회장은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이 회장의 신경영 얘기가 왜 나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 재판이 이 부회장의 경영 구상을 듣는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또 정 부장판사는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피고인들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씨도 이런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 미국 연방양형기준 8장과 그에 따라 미국 대기업들이 시행하는 실효적인 감시제도를 참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 연방양형기준 8장은 기업 내부에 일정 요건을 갖춘 준법감시기구가 있고 이 기구가 제대로 작동하면 고위 임원이 위법 행위에 가담했더라도 형량을 감경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엄중한 시기에 재벌 총수는 재벌 체제의 폐혜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최근 경험을 참고해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준법감시기구 설치와 이스라엘식 기업 혁신 계획 등을 재판부에 제출하면 형량을 결정할 때 고려해줄 수 있다는 취지로 들릴 수 있다.

정 부장판사는 또 이 부회장에게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삼성의 경영을 재판부가 걱정해준 셈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법관은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면 된다. 정 부장판사 스스로 규정했듯이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가 본질이다. 논점을 흐리는 발언으로 오해를 사는 것은 재판에 대한 불신만 부를 뿐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범죄 혐의를 엄격히 따지고 그에 상응하는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 관련 기사 : 1년 8개월 만에 법정에 선 이재용…재판장 부적절한 ‘경영 훈수’

▶ 관련 기사 : “이재용, 승계 위해 부정청탁” 정경유착 심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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