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아무개(52) 씨가 지난달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직접 써온 글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사사건건 충돌해온 검찰과 경찰이 화성 연쇄살인사건 재수사를 놓고 다시 부딪쳤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재수사해온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17일 “8차 살인사건 당시 수사라인에 있던 검찰과 경찰 관계자 8명을 입건했다”고 발표하면서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서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미 국과수가 감정 결과를 ‘조작’했다고 밝혔던 검찰은 입장문까지 내어 ‘조작한 게 아니라는 경찰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이에 다시 재반박하는 등 검경은 종일 공방을 벌였다. 한마디로 기가 찰 노릇이다. 엉뚱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 20년이나 옥살이를 시켜놓고 석고대죄는 못할망정 서로 손가락질에 여념이 없으니 말문이 막힌다.
경찰은 이날 당시 형사계장 ㄱ씨 등 6명을 불법체포와 감금, 독직폭행 등 혐의, 수사과장 ㄴ씨와 담당 검사 ㄷ씨는 불법체포·감금 등 혐의를 적용했다. 또 8차 사건 다음해 ‘초등생 실종 사건’ 수사 당시 형사계장이 피해자의 유골 일부를 발견해놓고 은닉한 혐의를 잡고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초등생 실종 사건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씨가 스스로 털어놓는 바람에 살인 범죄가 드러났으나 경찰이 그 주검의 일부를 확인하고도 은폐한 사실은 이번 재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아마도 연쇄살인사건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 두려워 덮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 놓고도 피해자 가족을 30년 이상 속여왔으니 그 파렴치한 행태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경찰 스스로 범행 전말을 철저히 밝혀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찰은 8차 사건을 맡은 검사 ㄷ씨가 범인으로 검거된 윤아무개씨를 임의동행해 구속 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아무런 법적 근거나 절차 없이 75시간이나 감금한 혐의가 있다고 했다. 불법감금과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얻어낸 데 대해 경찰뿐 아니라 검찰도 당연히 책임을 느껴야 한다. 사법적 통제와 인권 수사를 위해 수사지휘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검찰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고문으로 범인을 조작한 경찰이나 이를 밝혀내지 못한 검찰 모두 책임이 크다. 아무리 ‘수사권 조정’ 갈등 중이라 해도 남 탓 하기보다 자기 조직의 허물을 먼저 되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