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1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피해 가정 실태 조사 결과 발표를 듣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1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확인하고 판매를 중단한 지 10년이 흘렀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지금도 절반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피해 구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해 기업들의 비양심적 태도 탓이 크지만, 이를 방기하는 국회와 정부의 책임도 무겁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1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역학회가 전체 피해 가구 4953가구 중 1152가구를 조사했는데, 피해자들은 폐질환, 태아 피해, 독성 간염 등 정부가 인정한 질환 외에도 피부질환, 안과질환, 심혈관계질환 등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인 피해자의 49.4%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11%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아동·청소년의 경우도 15.9%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4.4%가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조사를 한 김동현 한림대 의대 교수는 “성인 피해자들의 자살 생각과 시도는 일반인과 비교해 3배 이상 높은 매우 심각한 고위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피해자 가구가 의료비, 간병비, 의료기기 구입비 등에 들인 비용은 평균 3억8천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기업으로부터 배상이나 보상을 받은 경우는 8.2%에 그쳤다. 대부분 정부가 피해 인정 판정을 해주지 않거나 소송을 제기해도 패소할 것 같아 포기했다고 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들이 부도덕한 기업 탓에 회복이 불가능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다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부담까지 지고 있는 것이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지난해 10월 피해 인정 범위 확대, 기업의 입증 책임, 배상·보상 규모와 절차 현실화 등을 담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2월에 통과됐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달 9일 여상규 위원장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법무부와 기획재정부가 ‘기업의 입증 책임’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는 이유를 들어 법안 통과에 제동을 걸었다. 피해자들이 국회에서 “이 순간에도 수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거나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무릎을 꿇고 법안 처리를 호소했는데도 외면한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1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의 민생 입법 과제의 하나로 야당에 제안했다. 국회가 이번만큼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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