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재판장 정준영)가 9일 재판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의 활동을 평가할 ‘전문심리위원’ 3명을 지정했다. 재판부 직권으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삼성과 특검 추천으로 각각 김경수 변호사와 홍순탁 회계사를 선정했다. 공소를 유지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선정 위원의 중립성과 평가 기간 등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올해 1월 준감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기로 한 것부터 비판이 많았는데, 활동 내용을 평가하는 절차마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재판부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전문심리위원의 역할은 준감위가 애초 약속한 대로 준법·윤리 경영의 파수꾼 노릇을 제대로 하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이 추천한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율촌 소속으로 ‘삼성 불법합병 사건’에 연루된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변호를 맡고 있다. 안진은 삼성의 요구에 따라 제일모직-삼성물산의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정당화하는 거짓 보고서를 만드는 데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변호사를 삼성이 추천한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할 이를 내세워 ‘셀프 평가’를 받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독립적인 준감위 활동을 통해 과거와 절연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은 어디 갔는지 이 부회장과 삼성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삼성과 특검의 추천 인사를 균형 있게 수용한 것처럼 주장한다. 어불성설이다. 특검이 추천한 홍 회계사는 삼성 불법합병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시민단체 인사다. 공익적 목적으로 한 활동이며 어떤 사적 이해관계도 없다. 반면 김 변호사는 영리 목적으로 삼성 관련 사건을 변론하고 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따를 가능성이 크다. ‘삼성 관련 변호인’을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놓고 어떻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평가를 받겠다는 말인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재판부는 이달 30일까지 평가를 마치게 하고 위원들의 의견 진술을 듣겠다고 한다. 자산 400조원인 삼성그룹의 준감위 활동 평가를 불과 3주 안에 끝내라는 것이다. 상식 밖이다.
이런 식이면 준감위 활동과 평가가 결국 ‘이재용 봐주기’를 위한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란 의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가 또다시 ‘삼성 봐주기’라는 오점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