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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폭력 증언’ 선수 내쫓는 ‘2차 폭력’ 방치 안된다

등록 2021-02-08 18:45수정 2021-02-09 02:41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난해 6월 최숙현 선수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는 체육계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놨다. 이른바 ‘최숙현법’(개정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됐고, 지난달에는 최 선수 등에게 폭력을 일삼고 강제추행에 유사강간까지 저지른 혐의를 받는 경주시청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트레이너에게 징역 8년(1심)이 선고됐다. 그러나 <한겨레>가 8일 시작한 기획 보도를 보면, 현장에서는 여전히 선수들이 폭력에 맞서기 어렵게 하는 부당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폭력 피해를 증언한 선수가 더는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도록 몰아가는 일이 대표적이다. 최 선수가 소속됐던 경주시청 여성 선수들 대부분은 재계약을 하지 못해 사실상 팀이 해체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적 선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 선수 사망 전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팀을 옮겼던 옛 동료 선수는 최 선수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한 뒤 소속팀과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단순한 계약 만료이다 보니 부당함을 주장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한다.

선수가 심한 부상을 당하면 ‘선수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느냐가 당사자에겐 생명에 빗댈 만큼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폭력 피해 선수들의 팀을 해체하거나 재계약을 거부하는 건 직접 폭력 못지않은 ‘2차 폭력’이다. 2018년 연맹 지도자의 폭언과 갑질을 폭로했던 경북체육회 여자 컬링팀도 지난해 “팀 해체 움직임이 있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이런 유명 선수들조차 선수 생활을 위협받는다면 일반 선수들의 실상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폭력 피해 대책이 정작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있는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7월 “폭력 등의 문제가 적발된 팀에 전국체전 5년 출전정지를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체전만 바라보고 피땀 흘리는 선수들로서는 폭력을 목격하고도 입을 다물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체육계 최상층부의 인식 수준이 이처럼 시대착오적인데 어떻게 폭력이 근절될 수 있겠는가.

지난해 8월 실업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폭력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로 ‘선수 생활에 불이익을 당할 거 같아서’라는 응답이 64.5%나 됐다고 한다. ‘선수 생명’을 볼모 삼는 ‘은밀한 폭력’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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