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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햇발] 진정한 반성이 빠진 ‘부동산 사과’ / 곽정수

등록 2021-04-06 15:11수정 2021-04-07 02:09

곽정수 ㅣ 논설위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부동산 실패에 대한 사과가 이어지고 있다.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이 연일 고개를 깊이 숙이지만, 기대만큼 반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진정성 있는 사과에는 세 가지가 꼭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고, 잘못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며,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의 사과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미흡하거나 아예 없다.

먼저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불분명하다. 그저 “국민의 분노와 실망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는 얘기다. 지난해 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물러났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문책성 경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 사과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실패 원인이 불분명한데 후속 대책이 충실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같다. 대출규제 완화 등과 같은 민주당 개선안에 대해 청와대가 “정책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제동을 걸어, ‘당·청 엇박자’만 노출했다. 선거에 쫓겨 진정한 반성이 빠진 ‘불량 사과’를 급조한 느낌이다.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반성할 부분은 무엇일까? 2018년 문재인 정부 경제라인의 고위 인사를 만나 “왜 부동산 보유세 인상에 소극적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해 6월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내놓은 보유세 개편안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인사는 “집값 안정을 위해 세금을 올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답했다.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래서 “2017년 대선 때 보유세 인상을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추가로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집값 안정과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선진국보다 낮은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문재인 대선 후보 역시 보유세 강화를 말했다. 하지만 정작 대선공약집에는 관련 내용이 송두리째 빠졌다.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문재인 캠프에 보유세 강화가 빠진 것을 따졌더니, ‘표 떨어질까 봐 조심한다’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참여정부는 보유세 강화를 위해 종부세를 도입했지만 세 부담 증가로 인한 여론 악화에 제대로 대처를 못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때의 경험을 살려 부동산 안정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종부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말로만 보유세 강화를 외치다가 ‘시장의 역습’을 당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1년간 시장은 보유세 강화를 겁내며 잠잠했다. 하지만 2018년 그럴 의지가 없는 게 드러나자 집값은 날뛰기 시작했다. 정부는 땜질·뒷북·핀셋 대응으로 효과가 없자 2020년 ‘7·4 대책’에서 다주택자의 종부세율을 최대 6%까지 올리는 ‘충격 요법’을 내놨다.

집권 초 선제적으로 단계적인 보유세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면 집값 급등과 급격한 세금 증가를 모두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크다. 보유세를 올리면서 선진국보다 높은 거래세는 내리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애초부터 보유세를 강화할 생각이 없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부동산 정책의 철학이 없다”고 꼬집는다.

정부는 얼마 전까지도 “투기와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다” “모든 대응수단을 준비해 놨으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대책이 나오면 집값이 잠시 진정되다가도 다시 오르는 일이 반복됐다.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급팽창한 과잉 유동성, 박근혜 정부 때의 무모한 규제 완화 등이 집값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거론됐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모두 예상된 위험들이다. 국민은 정부의 능력도 불신하게 됐다.

관건은 선거 이후다. 4년 전과는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집값 급등과 세금 급증은 이미 엎지른 물이다. 국민의힘은 규제 완화를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고, 세금 증가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보유세 강화의 근거가 된 낮은 보유세 실효세율(집값 대비 보유세 비율)이 여전한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시급하다. 그것을 토대로 보유세 정책의 방향을 재정비해서,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정부·여당의 대처에 따라 ‘부동산 재앙’은 이번 선거로 끝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마저 부동산으로 쓰러진다면 슬픈 일이다.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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