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에 대응하려면 이 부회장이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의 경영 일선에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논리의 타당성은 둘째 치고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 가치인 ‘법 앞의 평등’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6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며 ‘사면론’을 공식 제기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은 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사면을) 빨리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가세했다. 일부 보수언론도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이재용 사면 머뭇거릴 이유 없다”며 거들고 있다.
지난 1월 국정농단사건(뇌물공여 및 횡령 혐의) 파기환송심이 끝난 지 100일밖에 안 된 시점이다. 더구나 경제계의 공감대 형성도 없이 손 회장이 돌출적으로 사면론을 제기한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손 회장은 간담회 뒤 “다른 경제단체도 (사면 건의를) 지지했다”고 밝혔지만, 대한상의 등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동안 경제인 사면 요청은 대한상의가 창구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도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은 경제단체가 사면을 공동건의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도 ‘선처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한국경제 위기론’ ‘삼성 위기론’을 앞세워 언제까지 무리한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냐는 반론이 거셌다. 또 총수 부재 중에도 경영실적이 좋았다는 실증적인 반박도 제기됐다. 결국 이 부회장은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른바 ‘3·5법칙’(총수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는 관행)으로 상징되는 ‘재벌 봐주기’를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에서 재벌 특혜 근절을 위해 경제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을 공약했다. 이 부회장의 선친인 이건희 회장은 1997년(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2009년(삼성 특검 사건) 두차례 사면을 받았다. 삼성 총수에 대해 세번째 사면론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글로벌 ‘뉴노멀’로 부상한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경영’을 고려할 때 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인은 더는 설 자리가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