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23일 귀국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북정책, 코로나19 백신 협력,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협력, 대중국 정책 등을 논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이견을 드러내기보다는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아 이익균형을 맞췄다. 한국은 대북 정책과 미사일 지침 등 한반도 문제, 코로나19 백신 협력에서 성과를 냈고, 미국은 대규모 투자 유치, 중국 견제에 대한 한국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앞으로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백신 협력 등 성과를 구체화하고, 미-중 전략경쟁의 격랑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 선언’을 존중하고 그해 6월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초해 대화와 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북-미 협상의 연속성과 북-미 대화 동력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크다. 국내 일부 보수세력은 회담 전 ‘유화적인 한국 대북정책으로 한-미 동맹이 파탄났다’고 공세를 폈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성 김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을 북한과 협상하는 ‘대북특별대표’로 전격 임명했다. 인권을 강조해온 바이든 정부가 예상을 깨고 북한인권대사보다 대북특별대표를 먼저 임명해 북한에 대화 재개의 신호를 보냈다. 바이든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경제회복, 중동 문제에 집중하느라 대북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불식돼 다행이다.
미국이 다양한 방식의 남북 교류협력을 담은 판문점 선언을 존중한 것도 남북관계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대북제재를 들어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대북 지원과 남북 도로·철도 연결 사업 등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막았다.
북한이 대화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대화 조건으로 제시한 대북제재 완화, 한-미 연합훈련 조정 등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기 위해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연습을 어떻게 할지도 양국이 방침을 조속히 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모처럼 대화 환경이 조성된 만큼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호응하길 바란다. 미국은 북-미 접촉 과정에서 대북정책의 틀로 제시한 실용적 접근, 단계적 접근, 외교적 해결의 구체적 내용이 뭔지 자세하게 설명하기 바란다.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를 800㎞로 제약해온 미사일 지침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42년 만에 종료됐다. 한국이 미사일과 로켓 개발 주권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미국이 종료에 동의한 배경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사일을 직접 배치하는 대신 한국 미사일 능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됐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동맹은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단순한 군사동맹 차원을 넘어 세계적으로 중대 사안인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대응 등으로 한국의 역할을 확대했다. 미국은 반도체, 네트워크 기술 등 첨단산업 공급망 확충, 쿼드,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 등 사실상 중국 견제 방안도 글로벌 동맹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을 직접 겨냥해 수차례 비판하는 등 노골적으로 미국 편을 들었다. 이와 달리 한-미 공동성명은 중국 견제에 공감하면서도 ‘중국’이란 단어를 한차례도 사용하지 않는 등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우리는 국익을 중심에 놓고 미-중 전략경쟁에 냉철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