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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발생땐 수입중단’, 미국엔 딴 약속하고 ‘귀속임’

등록 2008-05-08 07:49수정 2008-05-08 17:13

광우병 발생시 정부 대응 방안
광우병 발생시 정부 대응 방안
재협상이나 독소조항엔 ‘소귀에 경읽기’…‘촛불끄기‘만
“대내적 조처…정무적 판단” 실토…통상마찰 부를수도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한 ‘검역주권’을 포기했다는 국민적 비판에 몰리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독자적 수입금지 조처를 내릴 수 없다던 기존의 방침을 바꿨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7일 일제히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과 합의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재협상이나 독소조항에 대한 개정 불가 입장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 등의 ‘광우병 발병 시 즉시 수입중단’ 선언은 일시적으로 국민적 비난 여론을 모면하려는 ‘공수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정부 방침이 바뀌기까지= 당·정·청이 그동안의 방침을 바꿔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때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내기까지는 긴박한 조율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강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는데도 수입을 중단하지 않으면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며 정부의 방침 전환을 압박했다. 이때만 해도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당 쪽에서 “7일 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논란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라며 7일까지 새 방침을 내놓으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후엔 청와대가 나서 농식품부를 움직였다. 조윤선 대변인은 7일 “어젯밤에 청와대와 총리실, 농식품부 사이에 수입중단 조처를 놓고 긴밀한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율 결과는 7일 오전 한나라당에 전달됐고, 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원고에 없던 ‘미국 광우병 발생 시 쇠고기 수입중단 조처’ 방침을 밝혔다.

■ 수입금지 할 수 있나= 그 자체로 보면 정부의 방침 변경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협약을 보면, 광우병처럼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수입금지 조처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모든 회원국들에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날 국회 청문회에서 “가트 20조에는 국민 건강에 위해가 있을 경우 수입 중단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국민 약속과 미국과의 약속이 다르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달 18일 미국과 협상에서 최종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안을 보면,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하향조정하는 경우에만 수입중단이 가능하다. 개정안은 오는 15일 농식품부 장관 고시로 확정, 시행될 예정이다. 따라서 개정안을 그대로 두고서 정부가 공언한 대로 광우병 발병 시 즉각 수입중단 조처를 내리게 되면 한-미 정부간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 된다. 통상마찰이 벌어질 게 뻔하며, 통상전문가들은 약속 파기 가능성을 공식화하는 것만으로도 국제적으로 신뢰를 크게 잃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학교급식법 개정과 학교급식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와 ‘건강권 보장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희망연대’ 회원들이 7일 오전 쇠고기 청문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학교급식법 개정과 학교급식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와 ‘건강권 보장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희망연대’ 회원들이 7일 오전 쇠고기 청문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정부의 속셈은?=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실 타결된 쇠고기 협상 합의문의 일부 조항 개정이나 재협상을 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미국에서 실제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이 낮으니까 대내적으로는 ‘수입중단 조처’를 밝혀도 괜찮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쇠고기 협상 수석대표인 민동석 농식품부 통상정책관도 “국제수역사무국 지침에는 광우병 발생 시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침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국내 여론의 반응 때문에 특별한 정무적 판단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선 “현재로선 재론할 수 없고, 다만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협의할 수도 있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부 관계자들의 이런 발언을 뜯어보면, 정부가 검역주권을 되찾기 위해 미국과 재협상을 할 생각은 없으면서 일시적으로 여론 무마를 위해 국내적으로만 강성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광우병 발병 위험을 놓고 국민들과 일종의 도박을 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정부의 새 방침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새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고시를 보류하고 미국과 재협상을 해 독소조항을 바꿔야 한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고시를 하게 되면 국제적 규범력이 발생한다”며 “정부의 방침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말로만 광우병 발생 때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하기 전에 입안예고 중인 수입위생조건의 개정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헌 임석규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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