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재창당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의 잇단 패배 이후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정의당이 ‘통합과 합당을 통한 혁신 재창당’에 나서기로 했다. 이정미 대표는 “다양한 시민사회, 제3의 정치세력과 통합과 연대를 모색하겠다”면서도 ‘금태섭 신당’ 등과의 통합 가능성엔 선을 그었다.
이정미 대표는 25일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혁신 재창당의 방향을 한뜻으로 모아 결정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당의 정체성과 비전을 뚜렷이 해야 한다”며 “노동과 녹색(환경·기후)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민사회, 제3의 정치세력들과 통합과 연대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미 대표는 △노동시민사회 △녹색당을 포함한 기후 정치세력 △‘로컬 파티’(지역정당)와 같은 지역 정치세력을 제3 세력으로 꼽았다.
앞서 24일 열린 당 전국위에선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생태국가’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 정당 추진을 의결했다. 정의당은 곧 당대표 산하에 신당 추진 사업단을 구성하고, 9월 중순께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정한 뒤 9월 말∼10월 초 당대회에서 이를 확정할 계획이다.
‘통합과 합당을 통한 혁신 재창당’은 지난해 9월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킨, ‘자강’을 바탕으로 한 재창당 결의안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당초 자강론은 정의당의 정체성을 먼저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뜻을 함께하는 세력으로 저변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합당이나 신당 창당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장혜영·류호정 의원 등이 중심이 된 당내 의견그룹 ‘세번째 권력’이 “정의당 해체 뒤 신당 창당”을 주장하고, ‘새진보연합’과 이동영 전 수석대변인 등 몇몇 의견그룹에서도 신당 창당론을 계속 이어가면서, 이정미 대표와 인천연합이 중심이 된 자강론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정미 대표는 전국위에 앞서 각 정파의 대표 격 인사들을 만나 ‘제3의 정치세력들과 통합·합당을 통한 혁신 재창당’으로 안건 내용을 미리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한 당내 인사는 “자강론을 그대로 전국위에 올리면 부결될 가능성이 있었고, 만약 부결된다면 ‘이정미 지도부’엔 큰 타격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위에선 ‘제3의 정치세력’을 문구 삭제하는 수정동의안이 발의됐으나 부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통합과 연대, 합당의 대상인 ‘제3 세력’을 두고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특히 ‘세번째 권력’은, 중도 우파 성향의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이미 정치적으로 교감하는 상태다. 이에 이정미 대표는 “당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해산하고 신당을 창당하자’ 이런 말을 하는 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이고 당의 결정에 반하는 이야기”라며 이들의 움직임에 공개적으로 ‘경고’를 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민주당 출신인 금 전 의원이나 양향자 의원(무소속)이 추진하는 신당과 함께 할 수 없다고도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그분들 살아온 궤적이나 정당 선택 과정을 볼 때 그 분들과 당을 함께 한다는 데 상당히 회의적”이라며 “거대 양당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하나의 당이 될 수는 없다는 걸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
이에 금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삶의 궤적’ 운운하는 말씀에는 반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당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며 “조국 사태 당시 그 심한 욕을 먹어가면서 내 딴에는 꼭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말을 할 때,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 편을 들어주는 발언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아주 가끔씩 그분들의 말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고민을 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우월감과 오만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당 일각에선 “혁신 없는 혁신 재창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전직 당직자는 “재창당은 그동안 정의당이 뭘 잘못했고 뭘 혁신할 거냐가 출발점이고 핵심인데 그건 쏙 빼놓고 신당 창당이 결론이 됐다. 내용 없이 당만 리모델링한다고 국민들이 정의당을 갑자기 호의적으로 보겠나”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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