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은 지난 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늘려,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문제도 해결하고, 이를 통해 고용도 해결해야 한다”며, 기본적인 국가정책 방향성을 소개했다. 노 의원은 또 자신의 삶에 대해 “학생운동 10년, 노동운동 10년, 진보정치 운동 15년”이라며 “시대가 필요로 할 때 모든 걸 다 버렸고, 한 번도 진보진영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질문 하나에 10~20분씩 답변을 이어가면서도, 논점을 흐트리지 않았다. 역시 ‘달변’이었다. (인터뷰는 진행순서 및 노 의원의 말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지만, 중복되는 말이나 주변 보충설명은 분량을 고려해 어느 정도 생략했음을 미리 밝힌다.)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세 사람 모두 ‘경제’와 ‘통일’을 이야기한다. 노 의원의 정책은 권영길·심상정 의원과 무엇이 다른가?
=민주노동당은 정책정당이고, 당헌으로 선거를 하기 때문에 당의 기본 노선 위에 서 있는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외형적 성장을 통한 경제발전과 그 속에서의 민생해결이라는 보수정당의 노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성장이 일자리를 못 만든다는 건 입증된 것이다. 수출은 100억불(77년)에서 3천억불(2006년)로 30배나 늘어났지만, 수출이 경제에 미치는 규정력은 과거보다 현저히 떨어져 있다. 경제의 구조변화를 이루지 않고 외형만 키워가면, 현재의 경제가 낳고있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뿐이다.
경제 내부를 바꾸는 데 제일 주목하는 건 일자리와 복지다. 정상적 고용구조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서민들의 구매력이 현저히 감소했고, 이것이 내수침체로 이어지고, 내수침체가 공장가동률과 가계수입 저하를 부르고, 다시 구매력 악화로 악순환된다. 고용구조가 파괴되고 있다는 건 여러 현상으로 드러난다.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인구의) 60%다. (전체 인구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외국의 3배다.(참고:전체 인구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 27.1%, 미국 7.3%, 일본 10.8%, 대만 16.0%) 국군이 60만명인데, 미용사가 60만명, 음식점이 70만개다. 이중 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7~8%에 불과하다. 나머지 자영업자는 월 수입 100만원 이하다. (자영업자의) 40%가 최저생계비 이하다. 이런 속에서 외형만 키우는 건 양극화를 더 벌이는 경제성장이다.
지금 국민소득이 2만불이지만, 10년전 1만불 때보다 2배로 잘 살거나 2배로 소득이 늘거나 저축액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 상위 10%~20%의 소득과 자산은 4~5배로 늘어났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양극화의 원인을 푸는 것으로부터 경제성장을 이뤄내자는 거다.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주류적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방식의 경제 해법에 근본적 차이를 나타낸다.
일자리와 복지, 이 쌍두마차의 해결이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구매력 증진을 통해 가처분 소득이 많아지게 해야 하고, 수출로도 해결 안되는 내수시장을 해결해야 된다. 수출 3천억불은 기록적인 거다. 수출신장률도 지금 굉장히 좋다. 그럼에도 수출과 무관한 100인 이하 사업장에 960만명이 자기 목숨줄을 매고 있다. 수출의 ‘빛’은 일부에만 비치고 ‘그늘’은 과거보다 더 커졌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없이 (이명박-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주자가 주장하는) 7% 경제성장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박이다.
경제 정책(사회적 일자리 확충)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은 ‘기업규제 완화-기업 투자-일자리 창출-내수 회복-양극화 해소’ 등의 공식을 만들고 있다. 이런 대책은 양극화 해소의 적절한 처방이 안 된다고 보나?
=제일 황당한 게 박근혜 전 대표가 300만개 일자리 창출하겠다면서, 노동규제를 말한 점이다. 단체행동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자본’에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건데, 그런 방식이 올바르냐? 실현 가능하냐? 수도권 규제를 풀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데, 지금 수도권 규제를 안 풀어서 일자리가 안 만들어지나?
현재 노조 조직률은 전두환 폭압 정치 때보다 낮다. 그땐 12%였는데, 지금은 10%다. 1980년대에 노사분규는 1년에 200건이 넘었지만 지금은 18건이다. (박 전 대표의) 진단 자체가 허위이고 잘못됐다. 또 하나, 우리나라 한계기업들이 중국으로 못 가게 하려면 ‘저임금 장시간 노동’, 그리고 ‘노동탄압’ 하면 된다. 70년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가야될 길이냐? 나는 박근혜·이명박 후보가 제시하는 길은 70년대식 ‘기업하기 좋은 나라’, 즉 중국·동남아를 말하는 거다. (우리나라는) 그런 방법으로 갈 수 없다. 이미 국제 분업화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유지할 수 없는 (업종, 공장들이 중국·동남아로) 간 거다.
100억원을 투자해 100인 이하 기업이 만드는 일자리와 500인 이상 대기업이 만드는 일자리는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수출액 3천억불 가운데 46%가 5개 품목에 국한됐다. 이 분야에선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일자리 안 만들어진다. 삼성전자 수출 늘지만, 채용인원은 점점 준다. 생산성, 기술혁신의 문제가 있고, 또 조선, 자동차, 반도체, 핸드폰은 주로 가격경쟁력+품질 경쟁력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삼성전자 핸드폰이 모토롤라나 노키아보다 싸기 때문에 많이 팔리는 게 아니다. 이미 싼 임금으로 물건을 더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수출이 잘 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것이 내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현저히 적다. 와이셔츠 수출하고, 가발 수출할 때와는 다르다. (한나라당 후보들과는)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어 기본철학이 다르다. 일자리는 민간 기업에서 많이 만들기 힘들다. 현대자동차가 그렇게 수출 많이 하지만 아무리 정부가 재촉해도 일자리는 많이 안 만든다.
(결국) 일자리는 공공부문에서 더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취업자 비율이 다른 나라의 국내 소득(1인당 GDP) 1만불 도달할 때 비하면 절반 이하다. 공공부문의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는 해법이 우선이고, 두번째는 중소기업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는 중소기업에 맡겨서 될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 지원을 해야 한다. 이제까진 성과주의적·형식적 지원이었다. 인턴사원 취업시키면 매달 60만원씩 1년 지원하고, 1년 뒤에 해고시킨다. 그런 방식으론 안된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공약 중 가장 실패한 게 ‘일자리’ 문제다. 집권 초기에 한마음 은행 추진하던 것 다 어디 갔나. 마치 김대중 정부의 제2건국위원회처럼 흐지부지됐다.
사회적 일자리와 중소기업 문제에 대한 현실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나는 부품소재 산업의 고용흡수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대대적 정부투자를 통해 여기서 일자리를 만들겠다. 일자리 따로 만들고 성장동력은 딴 데서 잡으면 안된다. 과거엔 공공근로 확대해 일자리 만들었는데 부의 재분배 효과는 있었지만 우리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에선 (성장에) 도움이 안된다. 신성장 동력을 개발해야 한다. 난 그걸 신에너지와 환경산업에서 찾으려 한다. 독일은 환경산업에서 100만개 일자리를 만들었다.
에너지 문제는 2002년에도 모든 후보들이 대체 에너지 산업 키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역대 어떤 후보도 그 얘기 했지만 어떤 당선자도 실행 못했다. 신에너지와 관련해 국제적으로도 뒤처져 있다. 10년 뒤 지금과 같은 휘발유, 디젤 자동차가 과연 존재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람이 많다.
부품소재산업, 그리고 에너지 환경 산업에서 일자리 창출하는 걸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가 공공부조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산업의 개척으로까지 이어져야 현실성이 있다. 고용률은 우리나라가 60%, OECD 평균이 65%다. (우리나라가 OECD 평균까지 올라가려면) 200만명의 추가고용이 필요하다. 내가 집권하면 절반(100만명)은 공공, 절반(100만명)은 신산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신규로 만들겠다.
-사회적 일자리는 환금성 있는 역할(경제성장 엔진)은 못한다. 공적 서비스는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덜 되는 것 아니냐?
=공공부문 일자리가 다른 나라의 (국민소득) 1만불 시절과 비교해 보면 1/3, 1/2 수준이다.(*참고:2006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1만8372달러) 공공부문 중에서도 재화 생산 등과 연관된 부분도 있고, 사회복지 서비스도 있는데 후자의 비율이 특히 적다. 우리나라 인구규모와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현저히 적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건가?
=(정부는) 적절하게 클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선 노무현 대통령과 인식이 같다. 우리 경제규모 등을 볼 때, 현재 ‘정부’가 너무 작다. 물론 관료주의 등으로 인해 과도하게 비대한 부분,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규모가 복잡한 부분 등은 손을 봐야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너무 작다. 의사 수, 변호사 수, 경찰 다 적다. 군인은 엄청나게 많지만…. 그렇다면 적은 것 중 시급히 늘릴 필요가 있는 순서대로 적정 규모까지 늘리는 게 필요하다.
복지 정책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주장에 대해 일각으로부터 ‘사회주의적 아니냐’는, 공격을 받기도 한다. 또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하는 일부 나라는 서비스가 저하돼 두 종류의 서비스가 생겨 일반인들이 받는 서비스가 더 열악해지는 측면도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조하면, 비정규직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 않나?
=현재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대로라면 비정규직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던 게 민주노동당이다. ‘사유 제한’이 아니라 ‘기간 제한’이니까. 어정쩡한 개혁이 결국 현실보다 더 후퇴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예고해 온 결과다.
앞 질문의 경우, 사회주의 딱지를 붙여서 하지 말자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 필요하다면 사회주의 아니라 뭐라도 해야지. 사회 양극화 내용을 보면, 소득·자산 양극화를 넘어 교육 양극화, 수명 양극화까지 갔다. 이걸 합리화할 수 있느냐? 돈이 없어 병원 못 가서 죽어야 된다는 걸 합리화할 수 있나?
무상의료 한다해서 모든 병원을 국유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완전 무상교육 하는 나라도 특수 사립학교는 늘 있다. 돈 더 많은 사람이 이런 학교에 가는 건 보장돼 있다. 그걸 다 없애겠다는 게 아니다. 다만 돈이 없어 학교에 못 가고,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을 없애겠다는 것이지, 돈이 많은 사람의 자유까지 봉쇄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의료·교육의 양극화가 되는 것 아닌가?
=아니다. 핀란드는 대학 4년 다 무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핀란드 대학이 질 떨어진다는 말 들어본 적 없다. 프랑스는 준무상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150~200유로(약 20~30만원)로, 우리나라의 1/10이다. 프랑스 대학이 우리보다 질이 떨어지나? 오스트리아는 100% 무상이다. 독일도 준무상이다. 교육은 거의 공적 서비스가 세계적 추세인데, 우리나라의 공적 서비스는 국방과 치안 밖에 없다. 세금 안 내도 치안 서비스 받듯이, 세금 덜 내도 교육 서비스를 받아야 된다는 거다.
대학 등록금이 고액인 나라는 미국, 일본, 우리나라 밖에 없다. 고등교육에 국내총생산(GDP)의 1%를 써야 한다. 대학진학률이 제일 높은 나라에서 교육시장의 70%가 사학이다. 국립대학 등록금도 한 학기 200만원이다. 이는 프랑스의 4년치 등록금이다. 그런데 대학 법인화를 국회가 상정해 놓고 있다. 일본은 국공립대 법인화한 뒤 등록금이 다 사학과 같아졌다. 현재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가려는 방향이 일치한다.
교육 양극화를 더 조장하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 의료법인도 우리나라 법인은 비영리법인이다. 개인소유라 해도 영리추구를 제1목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게 60년간의 원칙이다. 의료법인의 영리법인화 전환이 상정돼 있다.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다 찬성한다. 우리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거다.
공공부문 비율이 제일 적은 데는 밀림이다. 정글 속에 들어가면 공공 부문이 없다. 규제 없고 완전개방돼 있다. 누가 이익 보냐? 강자만이 이익 본다. 약자도 더불어 함께 살아야 된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잘살 순 없다. 그러나 그 갭(gap)은 적어야 되고, 산업과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적어지는 추세 위에 놓여 있어야 되고, 가난하다 해도 기본생활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자. 가장 절실한 건 2가지다. 교육과 의료. 결과는 보장 못하지만 기회는 같이 주자. 기회도 같이 못 주는 건, 신분제 사회다. 13~14살 먹은 아이들에게, ‘너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지, ‘각종 통계에 따르면, 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해야 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사회냐? 지난 20년간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비슷한 길 걸어왔다. 민노당은 다른 길로 한 번 가 보자고 제시하는 거다. 이에 대한 동의를 만들어가는 게 대선 과정이라 본다.
조세 정책
-‘탈세자금 전면몰수’, ‘백만장자와 대기업에 20조원 걷어 650만 빈곤층에 준다’고 했다. 현실 가능한 이야기인지, 그리고 선정적인 느낌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상징적으로 골라내 예시한 것이다. 단편으로 제시한 것이라 (내 뜻이) 충분히 전달 안된 면도 있다. ‘남북 10만 병력 감축’도 마찬가지다.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 의지의 문제다.
-세출 부문을 공약에서 많이 언급했는데, 세입도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히 그렇다. 세금에 관해 3가지 원칙을 세우고 있다. 하나는 조세정의 실현이다. 더 걷기 전에 안 걷고 있는 부분을 걷어서 조세정의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5천원짜리도 카드결제 하는데, 변호사들은 300만~500만원을 받으면서 카드를 받나? 고액학원들은 또 어떤가? 탈세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조세정의 실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두번째, 국가 예산. 이미 낸 예산이 잘 쓰여지고 있는 지 의심을 갖고 있다. 국회 예결위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수백억원 공항 지어서 손님 없다고 군대에 넘기고, 울진에 수천억원 들여 공항을 짓고 있다. ‘산간오지라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서 짓는다’고 한다. 무안공항은 지어놓고, 그냥 놀리고 있다. 운영하면 유지비가 안 나오니까…. 쓸데없이 길내는 것은 또 얼마나 많나? 우리나라는 토건국가다. 건교부는 짓기만 하면 뭐든 찬성이다.
이런 문제와 국방비. 국방비가 올해 22조원이다. 정말 필요한가? (남북화해를 주장하는) 현 정부도 평화통일 국방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 국방은 국방대로 강화하고, 대화는 대화대로 하고…. 따로 논다. 그 비싼 비행기(전투기) 어디다 쓸 거냐? 군 선도병력 감축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 식으로 국가 예산을 절약하려 한다. 이 두가지로 재원조달 상당 부분이 가능하다.
그 다음 필요하다면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거다. 민감한 세목이긴 하나, 부유세로 걷어들이는 액수 크지 않다. 아직 당이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과세 대상은 주로 자산 30억원 이상이다. 프랑스는 6억원 이상이다. 우리보다 훨씬 강도높은 부유세를 하고 있다. (우리도) 단계적으로 하자는 거다. 2002년 선거대책본부장 할 때, 한국정책학회로부터 각 당 후보 정책 중 최우수상 받았다. 모든 공약에 필요한 예산을 계산해놓고 견적을 다 붙였다. 그래서 평가를 좋게 받았던 거다. 그냥 내놓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당선된다는 건 국민적 동의를 전제하므로, 큰 국민부담 없이 실시할 수 있다는 거다.
통일 정책
-10만 병력 감축에 대해선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 같다.
=10만명으로 감축은 임기 이후다. 전제 조건이 있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북한의 비핵지대화, 북미수교까지 다 해결된 뒤, 그 이후로도 5~6년 이후다. 그런 예시를 든 건 그런 일을 실현가능하게 하려면 책임있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북 핵실험하면 전쟁할 것처럼 하고, 2·13 합의되면 평화공세 펴고…. 평화는 곧 밥이다. 말로는 경제라 하지만 이런 군사대립 속에서 이뤄지는 분단비용에 대한 생각은 왜 안 하나? 공장 안전을 위해 외부 침탈을 걱정해 1년 예산의 20% 이상을 쓰면서 그 공장의 생산성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평화를 북-미 관계 문제로, 우리는 결과적 수혜자라고 보는 것과 다르다. 이명박·박근혜 후보를 보면, ‘미국이 해결하라, 우리가 맞춰가겠다’는 거다. 평화를 통한 경제문제 해결이 전혀 없다. 대표적인 게 ‘한-중 페리’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경원선, 경의선 해결되면 끝나는 문제다. 그게 해결 안 된다고 보고 열차를 중국까지 실어나르자는 거다. 이것이야말로 평화에 대해 비전이 없고, 의지가 없는 거다. 이것은 단순히 안보관, 통일관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철학과도 연결돼 있다고 본다.
부동산 정책
-부동산 관련해 △부동산투기 범죄수익 몰수법 △분양원가 전면공개법 △주택 초과보유 제한법 △공공임대주택 150만호 건설특별법을 당선된 뒤 100 시간 안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법안 제출이 그만큼 의미를 갖는다면 지금 내도 되는 것 아니냐?
=지금 내면 (통과가)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선과 총선을 이어가자는 얘기다. 나를 당선시켜 주면, 제출할 법을 미리 공개하겠다는 거다. 대선 쟁점으로 만들겠다는 거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이 법에 50% 이상이 동의한다는 거고, 내가 당선되면, 국회는 국민의 뜻을 함부로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만일 거스른다면, 18대 선거에서 민노당을 다수 의석으로 (국민들이) 만들어주면 된다. 아예 국회까지 바꿔내는 식으로 운동을 하겠다는 거다.
민주노동당의 진로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하고도 여소야대가 됐다. 현재 9석 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이 집권한다면, 정국의 혼란이 불보듯 뻔한 것 아닌가?
=대선에서 당선되려면, 900만표 이상, 45% 이상 득표한다는 거다. 내가 집권한다면 18대 민노당이 9석이겠나. 100석 이상이 된다. 물론 100석이라도 1당이 안 될 수도 있다. 브라질 노동당은 두 번 집권했지만 두 번 다 1당이 아니었다. 첫번째 집권 때는, 3당 또는 4당이었다. 정책 연합 등의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은 152석에만 의존했지, 국민들에게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뢰받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고 언급했는데, 지금 민노당의 어떤 부분이 신뢰를 못받고 있다고 보는건가?
=민노당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만 ‘존재’에 대한 인지도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은 민주노동당을 모른다. 지지율은 10%에 불과하다. 데모하는 당, 운동권당 식의 단편적이고 분절된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 뭘 할 수 있는지, 뭘 해줄 수 있는지, 믿어도 되는 지는 모른다. 그건 다른 한편으로 민노당의 기회를 의미한다. 다른 정당은 이미 판단이 끝난 정당이다. 그런 점에서 신생정당이고, 판단 안된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겠다는 거다.
정책이 더 낫다는 것은 인정되고 있다. 그 정책이 현실성 있는 거냐에 대해선 판단이 유보돼 있다. 판단 유보층 60% 이상에게 지지와 신뢰를 갖도록 만들겠다. 신뢰없이 지지하니, 1회적 지지에 그친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싫으니까 민주노동당을 찍겠다’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정체성 빼곤 다 바꿔야 된다’고도 했다.
=진보정당의 특성 중 하나가 끊임없는 자기혁신이라 생각한다. 4·15 총선(17대 국회) 이후 새로운 무대 위에 섰다. 과거의 활동방식을 더 혁신해야 될 필요성이 생겼고, 뜨거운 기대가 몰려들 때 이를 충족시켜주면서 빠르게 성장해야 했다. 그런데 덜 했다. 10석 의석이라 하지만, 훨씬 세련되고 가슴을 파고드는, 내용을 알리는 작업을 해야했다. 내부 운영방식도 달라져야 된다.
활동방식, 내부 정파문제 등에 낡은 잔재가 있다면 빨리 버리자는거다. 우리끼리 모여서 집회하고, 대중전달 안되는 것, 고쳐야 된다. 여전히 저소득 계층에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150만원 미만 계층에서 지지가 낮다.(*참고:이 계층에선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가 제일 높다.) 그들의 의식 문제로 돌릴 게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뼈아프게 성찰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지 반성해야 한다.
진보대연합
-‘(민노당의 생각에) 동의하는 누구와도 연대해야 된다’고 했다. ‘그 누구’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또 민주노총과 민노당의 관계 설정이 애매해졌고, 민주노총은 민중참여경선제를 재촉구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은 같아야 한다. 진보대연합이라는 건, 민노당 외에 진보진영 후보가 있을 경우, 후보 단일화를 해야 되느냐의 문제인데, 중앙위에서 ‘단일화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범위’다. 신자유주의는 한-미 FTA와 비정규직의 문제다. 그렇게 볼 때 지금 기성 정치세력 중에서 새로운 진보진영 후보가 나올 지 안 나올지 속단하긴 어렵지만, 나온다면 얼마든지 진보연합을 논의할 수 있다. 이미 나타나 있는 세력 중에선 그런 대상이 없는 게 아닌가?
-손학규 전 지사 등이 중도개혁연합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조건에 안맞다. 손학규 전 지사는 평화를 보는 시각도 좀 다르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해선 많이 다르다. 경기도 지사때 신자유주의자였으니까. 그러나 범여권 일부 진영의 FTA 반대에 대한 진정성은 믿는다. ‘장관 때 뭐했나’(참고:김근태, 천정배 의원을 뜻함) 하는 주장은 맞지 않다. 그러나 기성 세력, 범개혁진영 안에서 진보대연합을 위한 신실한 동맹군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노회찬 개인
-선거전에서 굉장한 힘을 발휘하고, ‘불판 갈아엎자’ 등의 촌철살인 논평 등으로 대중적 스타로 부각됐다. 대학생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비민노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인기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언어유희가 강하지 않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노회찬 신드롬, 내 입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2004년 총선 때가 아니라 2002년 대선 때였다. 정책 책임자 나가는 토론회에 제일 많이 나갔다. 그때 얻었던 명성이었다. 정책은 전문가가 아니면 전달도 안 되고, 감흥도 없는 게 정책 토론회다. 나는 정책 토론회에 가장 많이 출연한 사람이다. 내가 제일 자신있는 게 정책 토론회다. 그것이 어떤 정책이든…. 진보정당 운동만 16년째 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내가 제일 오래 했다.
진보정당은 정책 빼면 시체 아니냐? 경제·평화·사법체제 등 제일 많은 투자를 연마해 왔기 때문에 콘텐츠와 관련해선 제일 자신있다. 그 어려운 콘텐츠를 국민들 앞에서 토론해서 상대방을 깨고, 우리 것을 감동있게 전달하는 건 수사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비유 몇 개로 콘텐츠가 전달되는 게 아니다. 이미 지난 대선 때 빛을 발했다.
콘텐츠는 민주노동당이 제일 많다. 정책정당이므로…. 문제는 민노당 콘텐츠 중에서 쟁점화되는 게 몇 개나 있느냐? 정책은 다 나와 있다. 성별전환 문제까지 법을 냈잖아. (3단 책장 4개에 빼곡히 들어찬 파일을 가리키며) 이게 내가 관심갖고 있는 정책들이다. 정치화하지 못한 정책은 자료일 뿐이다. 나는 그걸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장 적합하다는 거다. 단 하나라도 민노당의 얼굴과도 같은 정책을 쟁점으로 만든다면, 그래서 ‘민노당 찍을거냐, 말거냐’가 되면, ‘술 자리 10명 중 3명이 찍을 거라고 한다면’, 성공이다.
-민노당이 집권을 목표로 할 때 내세워야 되는 후보와, 집권은 힘들겠지만 대선의 장에서 민노당을 국민에게 최대한 많이 알리고 향후 집권의 밑거름으로 삼겠다고 할 때 내세울 후보가 다를 수 있나? 정책을 쟁점화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굳이 후보가 아니어도 선대본부장으로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권영길 대표는 굉장히 높은 인지도가 있고, 당내 장악력과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다. 심상정 의원은 의정활동에서 굉장히 많이 부각됐고, ‘FTA하면 심상정’ 할 정도로 활약했다. 이 둘을 제외하고 노회찬이 나와야 되는 이유는 뭔가?
=집권용 후보와 선전용 후보가 다르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번 선거가 단순 선전전이라고 생각지도 않다. 나 역시 정치경력 쌓으려 나온 것 아니다. 권영길 후보 인지도가 나보다 조금 높다. 그러나 지지율은 내가 더 높다. 대선 한 번도 안 나온 사람의 지지율이 앞서 나간다면, 선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폭발적으로 지지율이 올라갈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세 후보 중 지금 지지율 확 뛰어넘어 실질적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건 나라고 생각한다.
지지율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거다. 벌써 달라지고 있다. 거리에서도 피부로 많이 느낀다. 두 분 개인적으로 훌륭한 점 많이 가진 분들이지만,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필요한가, 당이 대선에서 뭘 얻어야 된다고 본다면, 내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현재 격차를 훨씬 더 벌릴 자신이 있다.
-끝으로, 인간 노회찬을 설명해달라.
=쉽지 않은 부분인데, 나는 56년생, 전후세대다. 전전세대보다 평화에 대한 갈망이 오히려 더 크다. 4·19 이후 모든 민주화 대목을 다 겪었고, 상당 부분 참여했다. 4.19때(만 4살 때)도, 이종사촌 면회하는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다. 고교 때는 유신반대 운동을 했다. 지금 50대 초반인데, 현대사를 가장 뜨겁게 살아온 세대들, 386만이 아니라 그 앞뒤를 통틀어, 이 세대들의 과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식이 가장 크다. 6월 항쟁은 대통령까지 배출했는데, 7~8월 투쟁은 이단자 취급을 받고 있다.
현대사의 변화를 완성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개인사 속에서 많이 갖고 있다.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십수년 보낸 사람이다. 내가 걸어온 학생운동 10년, 노동운동 10년, 진보정당 15년을, ‘운동권’ 한 마디로 얘기되기도 하지만, ‘운동권 출신’이라기 보단 시대마다 필요한 일을 하는 데 모든 걸 다 버렸다. 내가 진보정당 운동할 때 민중당 사라질 때도, 마지막까지 진보정당 깃발을 지켰다. 생활과 개인이력과 내가 하고자 하는 바가 일치하는 사람이다. 젊었을 땐 이거 하고, 나이 들어선 저거 한 게 아니다.
한번도 (진보진영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 진보의 가치를 위해 줄곧 투신했고, 앞으로 무엇이 되든 계속 그 길로 갈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정치는 직업 정치인이 해야된다’고 본다. 수십년 관료하다가 정치하는 건 직업정치인이 아니다. 밑바닥에서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생활정치인’이 직업정치인의 한 범주에 속한다. 앞으로 후배세대들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자원은 노동, 사회, 학술, 환경운동 등 운동현장 속에서 길러지고 검증된 사람들이 결국 권력 문제까지 다뤄야 된다고 본다.
권태호 조혜정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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