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별 선거자금 조달과 쓰임새
정당후원회 금지로 안정적 ‘돈줄’ 끊겨
은행 대출에 후보 주머니까지 털어
이명박·정동영 그나마 ‘여유’…나머지 ‘돈가뭄’
은행 대출에 후보 주머니까지 털어
이명박·정동영 그나마 ‘여유’…나머지 ‘돈가뭄’
선거전은 곧 ‘돈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가 쓸 수 있는 법정선거자금 한도는 465억930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조차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정당후원회가 폐지된데다, 삼성 비자금 사건 등의 여파로 기업들에게 손을 내밀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고보조금마저 한 푼 못 받는 무소속 후보들은 그야말로 악전고투 중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다. 선거보조금이 나오고, 당비 수입도 있는데다, 대선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국가에서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선거비용 지출액을 400억원으로 정하고, 이 가운데 260억원을 제2금융권에서 빌렸다. 선관위에서 받은 선거보조금 113억원도 있고, 50억원을 목표로 당비도 모으고 있다. 2002년 대선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싸들고 왔지만, 엄격해진 법과 최근 삼성 비자금 사태 등의 분위기 때문에 ‘뒷돈’은 꿈도 못 꾼다고 한다. 이 후보도 “부정한 돈은 10원도 받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상태다. 비용의 60%인 240억원 이상을 텔레비전 연설·광고 등 홍보비에 쓰는 대신, 지역·조직에 내려보내는 돈은 최소화했다. 2002년 대선 때 지구당(당협위원회)별로 4000만원 이상씩 지급했으나, 이번에는 월 100만원으로 줄였다고 한다.
한 당협위원장은 “당에서 돈을 안 쓰겠다는 것은 ‘내년 4월 총선에 나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각자 돈 쓰면서 선거운동하라’는 얘기”라며 “술·밥 사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유세차량 한 대만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당내에서는 “돈 선거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 돈이 안 내려가니까 전혀 움직이질 않고 있다”는 푸념도 나온다.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 선대위의 문학진 총무본부장은 지난 6일 당 워크숍에서 “의원들이 대출을 받아 선거자금에 보태자”고 제안했다. 80명의 의원들이 3천만원씩 대출을 받아 당비로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에는 이미 대출을 받은 의원들이 적지 않아, 실제 모금액은 20억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선대위는 보고 있다. 문 본부장은 “5년 전에 가능했던 후원회가 금지되면서 이제 선거자금 조달 방법은 차입을 하거나 당비를 모으는 방식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당직자들이 5천만원, 의원보좌관이 2천만원을 십시일반으로 모금해 특별당비 형식으로 내기도 했다.
두 차례나 ‘한나라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던 이회창 후보는 무소속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이 후보의 측근들은 “이 후보가 직접 지인들이나 은행권을 통해 돈을 빌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11차례 할 수 있는 텔레비전 연설을 2~4회로 줄이고, 최대 20분까지인 연설 시간도 5분 정도로 줄였다.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인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자신의 예금과 주식을 처분해서 50억여원을 조달했다. 여기에다 이용경 전 케이티 사장 2천만원, 김영춘 의원 1천만원, 곽노현 특보 1천만원 등 측근 10여명이 1억4천만원을 모았지만 이미 돈이 바닥난 상태라고 한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법정 선거비용의 4분의1에 가까운 115억원으로 대선을 치를 계획이다. 민주당은 중앙선관위가 최근 지급한 선거보조금 19억4천만원이 선거자금의 전부라고 밝혔다.
하지만, 각 후보 진영의 이런 선거비용 규모와 씀씀이가 실제와 얼마만큼 일치하는지는 두고봐야 한다. 선관위에 신고하는 법정비용 이외에 음성적으로 조달하고 집행하는 자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의 경우 법정선거비용이 341억원이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823억원과 113억원의 불법자금을 모금한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황준범 성연철 김태규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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