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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박승춘 뒤에 숨은 박대통령, 3일전 ‘야당과 약속’ 헛말로

등록 2016-05-16 19:36수정 2016-05-16 22:57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역대 국가보훈처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국가보훈처는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2008년 이전의 제창(참석자 모두 부름) 방식으로 되돌리지 않고, 최근까지의 합창(합창단이 부름)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역대 국가보훈처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국가보훈처는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2008년 이전의 제창(참석자 모두 부름) 방식으로 되돌리지 않고, 최근까지의 합창(합창단이 부름)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2008년 이전처럼 제창(참석자 모두 부름)하도록 하는 문제는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 회동 의제 가운데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16일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가 제창을 거부하고 합창(합창단이 부름)을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야당은 이번 사태의 진원지로 박승춘 보훈처장을 넘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하고 나섰다.

여야 모두 ‘대통령 의중’ 의심

박지원 “청, 보훈처 보고받았다 들어
박대통령이 윗선인 것 입증돼”
우상호 “차관급이 대통령 거역, 의아”
여당서도 “청와대 동의 있었던 듯”

국론 분열·정국 급랭 초래

우상호 “이 정권에 협조할 수 없어”
박지원 “협치 합의문 찢어버린 것”
새누리, 여소야대 냉기류에 ‘곤혹’

두 야당은 전날까지만 해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올해 5·18 기념식에서 제창될 것으로 기대했다. 박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차원에서 좋은 방안을 찾아보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말한데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박승춘 보훈처장에게 별도로 “전향적 해법”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아침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에게 보훈처의 합창 유지 결정을 알렸다. 박 원내대표가 “이게 대통령 뜻이냐”고 묻자 현 수석은 “보훈처에서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박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거듭 말하지만 (이전부터) 박승춘 보훈처장이 이 문제는 자기 손을 떠났다고 한 것은 윗선이 박 대통령이었다는 게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차관급 공무원(보훈처장)이 대통령 지시를 거역하는 해괴한 일이 생겨 의아하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냐”며 “진실이 뭔지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배후에서 제창 불가 방침을 제시했거나, 적어도 보훈처의 결정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라고 규정한 셈이다. 손금주 국민의당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입으로만 위기 극복을 위한 소통을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국론분열을 해소하겠다던 박 대통령이 오히려 국론분열의 주축이 됐다는 비판이다.

여당인 새누리당 안에서도 보훈처의 결정이 박 대통령의 의중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보훈처를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박승춘 보훈처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인 2011년 2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처장을 맡고 있고 청와대의 신임이 강한 것으로 안다”며 “이번 결정은 박 처장의 평소 소신과, 제창에 결사반대하는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한 청와대의 묵인·동의가 결합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는 5·18 행사를 뛰어넘어, 20대 국회 개원을 앞둔 여소야대 정치권에 냉기류를 몰고 올 조짐이다. 특히 이 사안은 호남이라는 지역과 민주화 세력이라는 지지층이 결부된 문제여서 야권이 더욱 강경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으면 이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경고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회동의 협치 합의문을 찢어버린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야당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새누리당도 ‘호재’를 기대하다 ‘악재’를 만나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새누리당은 원구성 협상과 법안 처리를 염두에 두고 호남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에 공을 들여왔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참 난처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여야는 당장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놓고 충돌이 불가피하다. 야당이 박 처장을 상대로 해임촉구 결의안을 낸 것은 대선 중립 의무 위반이 논란된 2013년과 ‘임을 위한 행진곡’ 폄하가 문제된 2015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여당 안에서도 “박 처장이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이 또한 청와대 의중에 달렸다는 관측이 많다.

성연철 송경화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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