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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노무현과 만남 뒤 정치의 길…‘적폐청산’ 과제 안고 재도전

등록 2017-04-03 23:17수정 2018-06-16 21:27

문재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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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64) 전 대표는 누군가의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편이 훨씬 편안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유신반대 시위를 이끌던 대학생에서 인권변호사로 늘상 사회변혁에 앞장섰지만, 그는 언제나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자유인’의 생활을 갈망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운명’인 듯 정치로 호출됐던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며 정권교체를 외치는 ‘현실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운명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문 후보는 가난 때문에 강냉이죽 급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월사금을 못내 수업 도중 쫓겨나는 아픔도 겪었다. 경남중·고등학교를 거쳐 재수로 경희대 법대(1972년)에 진학한 이후에는 공부보다는 유신반대 시위를 이끄는 데 앞장섰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하고도,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된 그는 검사나 로펌행 대신 “서민들이 겪는 사건들 속에서 억울한 사람을 돕고 보람을 찾는 보통 변호사”를 선택했다.

그가 정치의 길에 나서게 된 것은 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었다. 아니, 운명이었다. ‘변호사 노무현’과 부산에서 함께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던 문 후보는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면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생 문재인(맨 왼쪽)과 지금의 부인 김정숙씨(왼쪽 둘째).
대학생 문재인(맨 왼쪽)과 지금의 부인 김정숙씨(왼쪽 둘째).

특전사 부대 동료와 함께한 모습. 맨 오른쪽이 문재인 후보.
특전사 부대 동료와 함께한 모습. 맨 오른쪽이 문재인 후보.

변호사 개업 뒤 사무실에서 어머니와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변호사 개업 뒤 사무실에서 어머니와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그는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맡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계속되는 권유에도 국회의원 선거 출마 등 정치 일선에 나서는 건 극도로 꺼렸다. 그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호출한 건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였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그는 결국 2011년 말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야권 대통합을 통한 민주통합당 창당에 참여했고, 2012년 4·11 총선 당시 부산 사상구에서 의원에 당선된 뒤 곧장 대선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해 12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은 대선 결과는 51% 대 49%, 그에겐 뼈아픈 패배였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 직을 수행하던 시절.
참여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 직을 수행하던 시절.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경남 양산 시골집에서의 한때.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경남 양산 시골집에서의 한때.

권력의지 잠자고 있는 듯했던 그의 권력의지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한 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 때였다. 당시 당내 원로들은 물론 측근들도 ‘가만히 있으면 꽃가마 태워 대선으로 데려갈 텐데, 흠집만 잡힐 게 뻔한 대표를 맡아 뭘 하겠냐’고 말렸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녹아버린다”며 출마했다. 결국 당 대표가 됐지만, 이후 10개월은 가시밭길이었다. 대표 취임 뒤 두 달 만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들끓기 시작한 ‘책임론’은 ‘초선 대표’의 리더십 논란으로 비화됐다. 또 ‘공천 혁신안’ 처리를 위해 당 대표직 재신임 투표까지 내걸었지만, 안철수 전 대표 등이 ‘친문(재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대거 탈당하면서 당이 쪼개졌다.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위기에 직면한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2012년 대선 때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쪽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정계은퇴’까지 공언하며 공들인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한 것은 정치적 부담이 됐다.

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적폐 청산’과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하는 한편으론, “다름이 틀림으로 배척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그는 당 밖에서 불고 있는 반문연대 바람을 잠재우고, 반대편에 선 유권자를 설득해가면서 ‘과거’와 결별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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