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가 열린 지난 1월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김무성 의원(가운데)이 소속 의원, 지도부와 함께 무릎 꿇고 `국민에게 드리는 사죄의 글'을 읽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 의원 가운데 13명이 ‘친북 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는 대동단결해야 한다’며 2일 바른정당 탈당 및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다. 권성동 김성태 김재경 김학용 박성중 박순자 여상규 이군현 이진복 장제원 홍문표 홍일표 황영철 의원이다. 정운천 의원은 주중에 전북 전주에서 별도로 탈당을 선언할 예정이다.
바른정당 홍문표(가운데) 의원 등 13명의 의원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복당을 선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일표, 김학용, 박성중, 여상규, 박순자, 이군현, 홍문표, 김재경, 김성태, 황영철, 이진복, 권성동, 장제원 의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바른정당 의원들의 탈당 및 자유한국당 입당 사태의 본질은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내걸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세력이 눈앞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 장래를 포기하고 자유한국당 친박세력과 재결합한 것으로 풀이된다. 명백한 정치적 퇴행이다. 의원들은 ‘친북 좌파의 집권 저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바른정당이 대선에서 5위를 차지할 경우 의원 개개인의 생존 공간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 전에 미리 자유한국당에 복귀해 정치적 목숨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대선후보 여론조사 3위에 머물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이로써 2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추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동안 침묵하던 보수 세력이 ‘좌파 집권 저지’를 명분으로 총결집할 수 있는 구실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 구도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이전의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구도로 되돌아감에 따라 역풍도 예상된다. 이에 따라 홍준표 후보가 5월9일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경쟁에서 크게 불리해졌다. 바른정당은 의석이 18석으로 줄어 교섭단체가 무너지게 됐다. 무리한 재결합의 후유증도 예상된다. 당장 자유한국당 친박 의원들은 바른정당 의원들의 반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정치인들의 명분 없는 탈당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사태가 있다. 후단협 소속 의원들은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다른 정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다가 결국 집단 탈당해 정몽준 후보에게 옮겨갔고 두고두고 철새 논란을 빚었다.
이번 바른정당 의원들의 탈당 및 자유한국당 복귀에서는 명분이나 대의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후단협 사태 못지않은 퇴행이자 막장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학계와 전문가들의 비판도 매섭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는 명분이 가장 중요한데 이들의 행동에서 도대체 양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그동안 바른정당이 대선 이후 새로운 보수를 재건할 수 있는 세력이라고 상당히 기대를 걸었는데 너무나 실망스럽다”고 혹평했다. 강 교수는 “지금 후보 단일화를 한다고 해서 선거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처신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국민들을 농락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실 정치 세계는 냉혹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며 “원칙과 소신의 굴곡으로 보수 정치에 대한 실망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결과에 실제로 미칠 영향에 대해 그는 “보수 결집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지만 좀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을 미뤘다.
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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