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유승민 대통령 후보가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나와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패권정당’이라며 자유한국당을 뛰쳐나온 지 채 100일도 되지 않았다. 2일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복당을 선언한 13명의 의원은 1월24일 창당한 지 98일 만에 백기투항을 선택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좌파세력 집권 저지를 위한 보수대통합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개혁 보수’를 내건 창당 명분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때문에 황영철 의원 등 일부는 뒤늦게 탈당계를 거둬들이고 번복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바른정당은 애초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세력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분당 선언문에서 “저희가 결별을 선언한 친박 패권세력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망각했고, 그 결과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정치는 책임지는 것인데 기득권에 매달려 반성과 쇄신을 거부한 새누리당은 더 이상 공당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겨냥했던 핵심 친박세력은 여전히 자유한국당에 남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여론재판”이라고 비판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겠다. 공정한 재판을 받으면 무죄다”라고 주장하며 탄핵 반대 표심을 끌어당기고 있다. ‘강성친박’으로 분류되는 서청원·유기준·윤상현·김진태 의원 등은 되레 바른정당 탈당파의 자유한국당 입당 시도에 대해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비난하며 “철저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바른정당 홍문표(가운데) 의원 등 13명의 의원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일표, 김학용, 박성중, 여상규, 박순자, 이군현, 홍문표, 김재경, 김성태, 황영철, 이진복, 권성동, 장제원 의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바른정당을 떠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난해 말 새누리당 탈당파의 대변인 격으로 활동했던 황영철 의원은 이날 오전 탈당 선언 직후 “우리가 지금까지 결정하고 행동해왔던 것에 대한 소신은 변함없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보수 대통합과 보수 승리를 위해 과거에 대한 모든 아픔과 상처를 씻고 새롭게 함께해가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과 보수 지지자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한 탈당파 의원은 “보수층 지지자들은 후보 단일화 요구가 많다.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우리 지지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진복 의원은 친박 인적청산 문제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탈당파들은 ‘보수 대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이들의 선택은 ‘정치적 생존’ 때문이다.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유승민 후보만 바라보다가는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당 조직이 와해된 상황에서 대선에서 패한 뒤에는 ‘몸값’이 더욱 떨어져 자유한국당 복당 가능성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자칫 자신의 지역구마저 자유한국당의 새 당협위원장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거일 전에 서둘러 탈당을 결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른정당 잔류파는 이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세연 선거대책본부장은 성명을 내어 “얕은 계산에 의해 따뜻하고 깨끗한 보수의 깃발은 찢겼고, 새로운 정치를 펼치겠다는 약속도 무참히 훼손됐다. 좌파정권 탄생을 막기 위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혜훈 의원은 <와이티엔>(YTN) 라디오에서 “‘보수 개혁’ 없는 단일화는 보수가 영원히 죽는 길”이라고 말했다.
탈당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황영철 의원은 이날 오후 홍문표 의원실에 맡겼던 탈당계를 거둬들이고, 탈당 선언을 철회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위원으로 활약했던 황 의원은 이날 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해 최순실 청문회를 지켜보며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었다는 젊은이들이 실망했다는 문자를 많이 보냈다. 내가 이들의 꿈을 꺾는 것 아닌가 고민됐다”며 “친박 세력의 자기중심적인 (입당 반대) 입장 발표를 보면서도 ‘내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맞는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3일쯤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황 의원 외에 다른 의원도 탈당 보류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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