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발전설비 정비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발전 5사’(한국남동·남부·중부·동서·서부발전)가 변별력이 없을 정도로 ‘입찰 기준’을 대폭 낮추며 발전소 정비 경쟁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영화에 급급한 나머지 스스로 마련한 ‘가이드라인’까지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한겨레>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발전정비산업 경쟁도입 1단계’를 시행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모두 19건의 발전소 정비 경쟁입찰을 진행했는데 심사기준을 대폭 낮추면서 민영화에 속도를 냈다. 이 과정에서 입찰 참여업체들은 서류심사를 모두 통과했고, 서류 심사에서 만점을 받은 업체도 80%에 달했다. 또 경쟁입찰은 △참가자격요건 △서류심사 △입찰금액 제시(투찰)와 적격심사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각 단계마다 발전5사가 애초 설정했던 기준이 대폭 낮춰진 채로 경쟁입찰을 진행했다.
애초 2011년 ‘발전 5사’가 마련한 ‘발전정비산업 경쟁도입 정책결정 용역보고서’에 담긴 가이드라인에서는 ‘800㎿급 이상의 발전설비’ 정비 입찰에 참여하려면 ‘500㎿급 설비’ 실적이 있어야 했지만, 한국동서발전이 2015년 당진 9·10호기 보일러 설비 정비공사를 위해 낸 입찰공고에는 이 기준이 ‘200㎿ 이상 실적’으로 크게 낮아졌다.
서류심사에서도 가이드라인에서는 정비 실적을 A와 B급으로 나누고 점수를 차등 부과하기로 했지만, 삼천포화력 3·4호기 보일러 정비(남동발전), 당진 9·10호기 보일러 정비(동서발전) 입찰에선 A급 실적 채점 항목을 없애거나 A와 B급을 합쳐 평가했다. A급 실적이 없거나 다량의 B급 실적만으로도 서류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이다 .
적격심사에서도 최고 가중치를 주는 기준이 ‘경력 12년’이었지만 ‘경력 4년 이상’으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기술자 자격도 애초 가이드라인에서는 없던 낮은 수준인 ‘기능사’를 추가했다. 그 결과 낙찰 하한가에 가까운 낮은 금액을 써낸 사업자가 1차 입찰에서 바로 낙찰을 받은 비율이 95%(19건 중 18건)나 됐다. 발전사 관계자는 “민간업체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 입찰 기준을 완화했다”고 밝혀 민영화 실적 높이기를 위한 기준 조정이었음을 시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발전정비산업 경쟁도입 1단계’ 시행 결과, 발전 정비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확보한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케이피에스(KPS)의 시장 점유율은 2012년 64.3%에서 2017년 46.8%로 낮아졌고, 민간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35.7%에서 2017년 53.2%로 높아졌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2018년부터 ‘경쟁도입 2단계’를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경쟁도입 2단계는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발전 5사의 정비를 맡은 정비 노동자 5천여명의 고용 여건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여서 이들 노동자는 “정비 민간업체에 간접고용돼 있다”며 발전 5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우원식 의원은 “경쟁입찰 기준을 턱없이 낮추면서까지 무리하게 발전사 정비업계 민영화가 진행된 사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하며 “발전 5사는 생명안전 업무에 해당하는 정비를 담당하고 있는 5천여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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