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선거제 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당의 입장을 논의하기 위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하태경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찬성 12표 대 반대 11표’
23일 오후 1시55분께, 선거제 개편 등을 포함한 여야 4당 합의안이 불과 1표 차이로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추인됐다. 바른미래당을 포함해 전날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에 합의한 여야 4당이 이날 모두 당 의원총회에서 합의안을 추인하면서, 20대 국회는 정치권의 오랜 숙제였던 선거제 개혁과 검찰개혁 등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 지난달 11일 여야 4당이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논의에 들어간 지 40여일 만의 성과이기도 하다. 다음 고비는 오는 25일 열리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인데, 두 위원회에서 의원들의 표결로 신속처리 안건을 지정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등 나머지 3당의 추인 과정은 수월했다. 이날 오전 민주당은 의원 85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원총회를 열어 전날 4당 합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오늘 오후부터라도 자유한국당이 협상을 시작하기를 바란다”며 “(한국당을) 설득해서 선거법과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여야가 원만하게 타협해 처리하도록 하고, 그를 위해 민주당이 가장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대표도 의결 전 모두발언에서 “상대와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라 (민주당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지만, 여야 4당이 합의해 처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배가 뭍에 있을 때는 움직이지 못해 일단 바다에 들어가야 방향을 잡고 움직일 수 있다. 오늘 안건은 배를 바다에 넣는 절차인데, 일단 배가 떠야 방향을 잡고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독려했다. 비슷한 시각 정의당과 민주평화당도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바른미래당 의원총회는 그야말로 순간순간이 ‘살얼음판’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시작된 의총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1시55분까지 이어졌다.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국민의당계인 원내 지도부는 의총 시작 전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바른정당계인 지상욱 의원은 의총장에 들어서기 전 기자들과 만나 “오늘부터 김관영 원내대표를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다. 의총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을 두고도 격론이 벌어졌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 손학규 대표(왼쪽)와 유승민 의원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의총 초반엔 추인 절차에 대한 이견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고 한다. 패스트트랙 안건을 ‘당론’으로 결정할 것인지를 놓고 의원들이 충돌했다. 바른미래당 당헌은 ‘주요 정책, 법안 등에 대하여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당론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단순 ‘의결’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된다. ‘당론이냐, 의결이냐’를 놓고 대립한 것은 계파별 의원 수 때문이었다. 바른미래당 의원 29명 중 국민의당계는 21명, 바른정당계는 8명이다. 당원권이 정지된 의원 4명(박주현·이상돈·장정숙·이언주)과 당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박선숙 의원, 해외출장 중인 박주선 의원을 제외하고 23명이 이날 의총에 참석했다. 결국 합의안 추인이 당론 결정 사안인지 의결 사안인지 가리는 투표가 진행됐고, 12 대 11로 당론이 아닌 의결 사안이라고 결론이 났다.
정오를 지나 이어진 추인 표결 결과도 찬성 12표, 반대 11표로 똑같이 나왔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추인 결과에 따라서 앞으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합의안의 취지를 살려 내용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합의에 대해 ‘당론’ 대신 ‘당의 입장’이라는 단어를 썼다.
불과 1표 차이로 결과가 갈릴 만큼 당내 갈등을 드러낸 의총이었지만, 바른미래당으로선 지난해 12월 손학규 대표의 ‘단식 투쟁’으로 시동을 건 선거제 개혁을 마침내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는 이들도 있다.
김미나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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