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국회 정무위 회의실에서 열린 정치개혁특위에 투표용지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여야 4당이 합의한 정치·사법개혁 법안이 천신만고 끝에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 안건)에 올랐다. 20대 국회의 숙원으로 꼽히던 개혁 과제들이 비로소 입법 궤도에 오른 것이다. 지난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합의안에 서명한 뒤 일주일 만이다. 그사이 국회는 몸싸움과 회의장 봉쇄 등 ‘동물국회’ 논란에 휩싸였고,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표결 처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당분간 여야 갈등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9일 밤 10시50분께 각각 전체회의를 열어 패스트트랙 지정에 필요한 소속 위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거쳐 선거제 개혁안과 2개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사개특위에서는 자정 직전인 밤 11시55분에, 정개특위에서는 하루를 넘긴 30일 새벽 0시33분에 표결을 통해 가결됐다.
특히 사개특위는 이날 공수처 관련 여야 4당이 합의한 법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 두가지를 모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두 특위에서는 패스트트랙 지정을 표결하려는 더불어민주당 등 4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당 및 바른미래당 일부가 서로를 “헌정 유린 세력”이라고 비판하며 국회 곳곳에서 대치했다. 가까스로 개회한 뒤에도 한국당의 “독재타도” 구호가 이어지자,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퇴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앞서 한국당은 지난 25일 바른미래당이 사개특위의 오신환·권은희 두 위원을 모두 사보임한 것을 두고 ‘국회법 위반’ 등을 주장하며 회의장을 이날까지 봉쇄해왔다.
한국당의 물리적 저지로 막히고, ‘사보임 논란’ 뒤 바른미래당 내 반발이 커지며 흔들렸던 ‘패스트트랙 열차’는 29일 사보임됐던 권 의원의 대표발의안을 패스트트랙에 함께 올리는 데 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4당이 동의하면서 비로소 출발할 수 있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존 합의안과 동시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는 제안이 수용된다면 국회 사개특위·정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바른미래당 공수처 설치법안’을 동시에 사개특위에 상정하자고 제안했다. 권 의원을 사보임하는 과정에서 당내 반발이 거셌던 만큼, 권 의원의 입법 제안 취지를 살려 당 내부 갈등을 수습하려는 취지였다.
나머지 세 당도 패스트트랙 지정에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내부 사정을 고려해 동의했다. 일정대로 개혁법안을 처리하는 게 시급했던 민주당이 바른미래당의 제안을 수용했다. 민주평화당은 2개의 공수처 법안을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사개특위 개의 전에 열린 의총을 통해 패스트트랙 지정과 국회 정상화가 더욱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당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일주일간의 긴 투쟁 과정에서 꼼수와 편법, 불법으로 패스트트랙을 관철하려는 그들의 목표는 딱 하나, 좌파 장기집권 플랜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한국당과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등은 지난 25일 헌법재판소에 위원 사보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여야 대치 과정에서 고발과 맞고발도 줄을 이은 탓에 이번 갈등의 여파가 장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은 지난해 말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새 선거제도 마련’을 요구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15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등을 포함한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은 “연동형 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선거제 개혁 법안 마련과 동시에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에 착수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하지만 그 뒤 한국당이 ‘비례대표제 폐지’를 당론으로 들고나오면서 합의를 깼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선거제 개혁법안을 포함해 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키지’로 묶는 데 합의했고, 이들 패키지 법안을 이날 마침내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정유경 장나래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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