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치·사법제도 개혁안 패스트트랙 지정 뒤 한달 넘게 여야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회 정상화를 위한 물밑 접촉이 6월 첫주에도 성과 없이 끝났다. 집권 여당의 요구를 한사코 거부하는 자유한국당의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정치)가 국정을 마비상태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현장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6월 국회 소집요구서 제출 계획이 없다. (주말에도 한국당과) 계속 전화통화하고 직접 만나는 것도 열어두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정상화 협상 공전과 관련해서는 “한국당의 과도한 요구로 국회 정상화가 발목 잡혀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해) 100% 사과와 100%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집권 여당에) 백기투항을 하라는 것으로 온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요구를 한국당이 고집하는 한 협상이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날도 “패스트트랙 지정 철회와 사과”라는 기존 요구를 반복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이런 와중에 단독 국회 운운하는데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으로 제1야당을 길들여보겠다는 것”이라며 “매우 불쾌한 방식의 협상 전략”이라고 날을 세웠다. 6월에는 반드시 임시회를 열도록 명시한 국회법에 따라 단독으로라도 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하려는 민주당 쪽 움직임을 겨냥한 것이다.
이런 한국당의 태도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비토크라시의 전형’이란 비판이 나온다. 비토크라시는 “상대 정당의 주장과 정책에 무조건 반대함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불능의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정치학 용어로, 홍영표 민주당 전 원내대표가 지난 3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언급한 바 있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당이 여야 4당에 ‘자기부정’에 해당하는 패스트트랙 철회·사과를 조건으로 내걸고 국회 정상화를 지연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해 상황 진전을 봉쇄하는 비토크라시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도 “한국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지지층 결집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선 최근 강도를 더해 가는 한국당의 ‘거부정치’가 황교안 대표의 과욕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황 대표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이 정부가 실패하는 것뿐”이라며 “모든 정책과 입법 노력에 제동을 걸어 총선을 앞두고 ‘해놓은 게 없는 실패한 정권’의 이미지를 심으려는 셈법”이라고 했다. 한국당 일각에선 나경원 원내대표의 우유부단함을 꼬집기도 한다. 중부권의 한 3선 의원은 “나 원내대표로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채 국회로 복귀했을 때 당내에서 직면하게 될 반발이 두려울 것”이라고 했다.
학계에선 국회 일정을 여야 합의로 정하도록 한 국회법과 정치 관행을 바꿔 맹목적인 거부정치의 폐해를 줄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지금처럼 한쪽 당이 반대하면 국회 일정이 ‘올스톱’되는 합의 방식이 아니라 미국처럼 1년 일정을 미리 정한 뒤 그 일정대로 국회가 열리도록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규남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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