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자유한국당이 미-중 무역분쟁 등을 거론하며 연일 경제위기론을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 심사는 예산안 제출 7주가 다 되도록 거부하고 있어 경제불안 요인을 정부 공격의 소재로만 활용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위기라고 주장하면서도 위기 대처에 발목을 잡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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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에도 자유한국당은 경제위기론을 띄우는 데 당력을 집중했다. 황교안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세계가 사상 유례없는 고용 풍년인데 우리만 (일자리) 마이너스 성장”이라며 “경제가 위기에 빠진 원인은 이 정권의 좌파경제 폭정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희경 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문재인 정권은 현재도 진행 중인 경제폭망, 비관적인 경제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며 “경제에 있어서도 자유한국당이 대안정당임을 국민 앞에 당당히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매일매일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이런 행태는 전형적인 자가당착이란 비판이 나온다. 한국당이 추경 처리를 거부하면서 “총선용 예산”이어서 “경기 대응 효과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황 대표는 최고위에서 “추경이라고 하면 그나마 제대로 짜와야 되는데, 재해추경이라면서 재해 관련 예산은 2조2천억원에 불과하다. 단기 알바 예산같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사업에 4조5천억원을 편성해놨다”고 주장했다. ‘추경안이 잘못됐다’고 밖에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국회에 들어와 재해 예산을 늘리거나 경기 대응을 위한 ‘제대로 된 추경안’을 만들 기회는 걷어차고 있는 셈이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민생경제 살리자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추경을 안 받는 건 이율배반적”이라며 “민생을 다루는 것보다 지지층 결집에 힘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추경 내용에 비판할 게 있으면 국회에 들어와서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모든 논의를 내팽개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한국당 말대로 국가 경제가 그렇게 어려우면 국회에 들어오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확대고위당정협의회가 1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려 김수현 정책실장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대화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여권은 이날도 추경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압박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연 확대고위당정협의회에서 “국회가 일손을 놓은 지 두달째다. 추경안이 제출된 지 47일이 흘렀다”며 “계류 법안 모두 민생안정과 경제활력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저도 답답하다. 국민에게도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정부의 들러리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본연의 임무에 함께 충실하자는 제안”이라며 등원을 촉구했다.
당정청은 이날 회의에서 늦어도 7월 안에 추경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이번주 초 국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제 경제 환경이 생각보다 더 악화되고 있다.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 재난 대처도 중요하지만 경제 활력 재고가 더 심각한 문제”라며 “경제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닌데 자유한국당이 옛날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장기간 국회 정상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추경이 안 되면 여당이 민생 파탄 책임을 한국당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런데 당 내부는 ‘조건 없는 등원’ 등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이제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김미나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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