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14일 국회를 방문한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정세균 국회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대정부질문 출석 등 국회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황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의장과 개별 면담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7일 조국 법무부 장관은 취임 뒤 처음으로 국회에 왔다. 원래 이날은 여야가 합의했던 20대 국회의 마지막 교섭단체대표연설이 잡혔던 날로, 조 장관을 비롯한 신임 국무위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첫 등원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조 법무부 장관이 교섭단체대표연설에 참석하는 것에 반발하며 일정 자체가 무기한 연기됐다. 본회의장에 장관으로서 출석해 연설을 듣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이날 조 장관은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찾아 취임인사를 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예방을 거절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조국을 (장관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만나지 않겠다”고 잘랐다.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 체포영장 발부를 이유로 회의에 불참해 개회되지 못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장관이라는 말, 죽어도 못하겠다”
2017년 2월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의 등원을 촉구한 사례처럼 등원을 하지 않은 국무위원을 질타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오겠다는 국무위원을 거부하기 위해 교섭단체대표연설 등 합의했던 여야 일정까지 무기한 연기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국회법은 국회의원들에겐 국무총리·국무위원 등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62조)를 보장하고, 국무위원들에겐 국회에 출석할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121조)로써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무위원 출석을 문제삼아 교섭단체대표연설이 ‘무산’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국회의 국무위원 출석 요구 절차는 의원 20명 이상의 발의와 본회의 의결을 거치게 돼 있다. 보통 개회식 때 국무위원 출석요구 건을 처리하고 이에 따라 국무총리와 장관 등이 국회에 출석한다. 하지만 9일 새로 임명된 신임 국무위원들은 지난 2일 개회 때 의결한 ‘국무총리·국무위원 및 정부위원 출석요구’ 명단에선 빠져 있어 새로 요구서를 내야 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관계자는 “국무위원 출석 요구서를 각 교섭단체 당이 돌아가면서 내는데, 이번이 자유한국당이 낼 차례였다”고 설명했다. 본회의 발의조차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야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장관이란 말을 죽어도 못하겠다”(10일 장외집회)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날(16일) 기자들과 만난 나 원내대표는 “피의자인 조국 전 청와대민정수석이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오는 게 맞는지 이견이 있어 이번 주 정기국회 일정은 일단 진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장관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검찰 수사 대상인 피의자가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을 듣겠다며 국회 본회의장에 앉을 수 있느냐는 주장인데,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1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4월 불법과 폭력으로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도 경찰 조사조차 거부하며 버티고 있는 59명의 피의자들을 보유한 정당이 할 소리는 아니”라고 꼬집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 당시 국무위원들이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위해 열린 본회의에 출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다 개회가 되지 못하자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은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시 원내대표의 대표 연설이 예정돼 있었으나
■ 조국 대정부질문 출석엔 왜 반대 않나?
교섭단체대표연설 출석은 안 되지만, 대정부질의 출석은 양해하겠다는 식의 야당 입장도 도마에 올랐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앞서 조 장관의 출석을 거부하며 “다음주 대정부질문 때 나와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어 국회에 오지 말라고 해놓고, 대정부질문에 부르는 것은 모순 아니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그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그 자리에 앉아서 (장관이) 청취하는 역할이고, 대정부질문은 (질문대상자로) 장관을 부를지 말지 의원들이 정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어도 인정하지 않아도 질문할 수 있고, 그것은 대정부질문을 하는 의원들의 선택”이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앉아서 연설 듣는 건 허락할 수 없지만 불러 세워 추궁하는 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당도 대정부질문을 인사청문회의 연장선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17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정부질문에서) 조국 인사청문회2로서 출석을 허용하겠다”라며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의혹들이 검찰 수사 과정을 통해 더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이 있고, 본인의 관여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인사청문회 대상으로서의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한 질문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야당은 또 이번 교섭단체대표연설 무기한 연기를 통해 조 장관이 ‘무혈입성’하는 그림을 막아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교섭단체대표연설 첫날 민주당에서 민생우선론·검찰개혁론 등 화두를 내세워 조 장관을 지원사격할 것도 감안했다. 야권 관계자는 “안 그래도 지지자들에게 청문 정국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첫날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연설 때 조 장관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상견례하고 여당 의원들에게 격려받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며 “대정부질문에선 적어도 야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식 뒤 원내보고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게 되면) 피의자 장관 조국이 본회의장에 출석해 인사하게 된다”며 “국회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조국 국회 등원을 막겠다는 각오”를 설명해, 연좌농성중이던 한국당 의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2017년 9월5일 이낙연 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 “정기국회 보이콧 없다”지만… 일정 제동 거는 야당 속내는
교섭단체대표연설 거부 자체는 야당의 ‘국회 보이콧’의 일환으로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엔 야당의 ‘전면 보이콧’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17년 정우택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장겸 전 문화방송(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 사태에 항의하며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포함한 의사일정을 거부했었다. 이번에도 당장 이번주 정기국회 일정이 파행으로 치달으며 대정부질문·국정감사 차질까지 우려되지만, 한국당 법사위 소속 의원은 “정기국회 보이콧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야당 원내지도부가 대정부질문 일정 조정 등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청문회 일정 합의 때와 비슷한 ‘지연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조국 이슈’를 오랫동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리겠다는 속내다.
무엇보다 총선 전 마지막 정기국회를 사실상 ‘반조국 연대’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호재’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박인숙·강효상 의원, 김문수 전 지사 등 원내외의 ‘삭발 릴레이’도 이어지며 야권 지지자들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대안정치연대의 박지원 의원은 17일 “어쨌든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장관에 임명된 후에, 이렇게까지 삭발이든 뭐든지 하면서 계속해서 반대했던 그런 사례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조국 장관이 차지하는 여권 내 내년 총선이나 대권후보의 가능성을 두고 지금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머리를 깎든, 단식을 하든 한국당의 자유지만 국회까지 볼모로 잡을 이유가 무엇이냐”며 교섭단체대표연설 무산 사태를 꼬집었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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