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그들은 왜 3년만에 촛불을 들었나
28일 대검찰청앞 주최쪽 추산 150만~200만명 집회
“피의사실 공표 등 조국 가족 수사 과도하다” 폭발
“적폐청산 대상인 검찰이 민주주의 흔들어” 공감대
검찰개혁 사법적폐 청산 범국민 시민연대가 28일 오후 서울시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연 ‘제7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반포대로와 인도를 가득 메운 채 촛불 파도를 일으키며 ‘검찰개혁 이뤄내자’ ‘공수처를 설치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처음부터 복기 중이다. 내가 어느 지점부터 오판한 것인지.”
28일 저녁 서울 서초동 반포대로 일대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이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부정적이었던 그는 “지난주부터 지역구 분위기가 심상찮긴 했어도,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릴지 몰랐다. 다음주 집회에는 얼마나 더 나올지 기대된다”고 했다. 이날 집회는 주최쪽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주최쪽 추산 150만~200만명)였다. ■ 참가 규모 이례적…“검찰, 해도 너무한다” 이날 집회는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전조’나 ‘징후’가 없었다는 점이 그랬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9일 통화에서 “2002년 이후 여러 차례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는 대개 4~6주에 걸쳐 예열됐고 그 과정을 언론이 집중 조명했다. 이번처럼 대규모 인원이 갑자기 모인 것은 촛불집회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언론 주목이나 예열 과정도 없이 대규모 군중이 폭발적으로 결집한 것은 ‘2000년대 촛불’의 패턴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규모 면에서 ‘2016년 탄핵 촛불’에 비견되지만, 당시처럼 중도층까지 참여했는지는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은 “실망했던 중도층까지 돌아온 집회냐 아니면 지지층 결집 집회냐, 그 판단이 중요한데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까진 지지층 결집 집회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라이브’가 지난 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조국 법무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가 지나치지 않다’는 응답은 49%, ‘지나치다’는 41%였다.
다만 여권 지지층 사이에선 ‘검찰 수사가 과하다’는 게 지배적인 여론으로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단순히 ‘수사가 과하다’고 느끼는 것과 그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집회에 간다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행위라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피의사실 공표가 과도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여론이 응집했다”고 했다. 정국의 향배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조국 장관의 도덕성에 실망해 의견 표출을 꺼리던 범여권 지지층이 검찰의 도를 넘는 수사행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검찰개혁’이란 대의명분까지 주어지자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다. 한 정치평론가는 “조국 장관 집 11시간 압수수색이 터닝포인트였다. 검찰의 자충수였다”고 짚었다.
검찰을 겨냥한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지지층의 행동을 촉발한 측면도 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유엔총회 연설 등을 마치고 26일 귀국한 다음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에게 브리핑을 지시했다.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지지층 입장에선 조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서 조 장관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 주최 7차 촛불집회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려 참가 시민들이 촛불로 파도를 만들며 검찰 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선출 권력 흔드는 막강한 검찰 힘 체험 한달 넘게 검찰이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하면서 ‘검찰의 힘’을 국민들이 체감하게 됐고, 이에 위협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있다. 신진욱 교수는 “문 대통령 말처럼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조 장관에게 의혹이 있다면 수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 검찰의 행태를 보면서 사법권력을 시민이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고 진단했다. 검찰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의 범위를 넘어 대통령의 임명권에 도전하는 것처럼 비치면서 여론의 변곡점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2000년대 타오른 촛불은 대부분 선출된 권력도 부패했다면 법치주의 원리에 따라서 견제받아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선출되지 않는 국가기구, 즉 사법권력에 시민들이 견제에 나선 최초의 촛불집회”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지난 한달간 검찰 스스로 ‘검찰개혁’이라는 의제를 세팅했다. 최소한 지지층 사이에선 최우선 개혁과제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2016년 ‘촛불의 승리’를 경험한 이들이 이번 사태를 ‘촛불에 대한 부정’으로 인식한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촛불시위 당시 인터넷상의 빅데이터를 분석했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검찰개혁 촉구 시위와 탄핵 촛불시위 사이의 연속성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촛불시민’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됐다. ‘촛불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주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촛불시민의 가장 큰 요구는 적폐청산이었는데, 그 청산의 첫 순위로 꼽히던 검찰이 힘을 휘두르며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다시 결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검찰의 표적수사와 피의사실 흘리기, 언론의 무분별한 받아쓰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낳았다는 2009년의 트라우마도 지지층을 결집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10년 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 검찰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집단적 기억과 다짐이 있었다. 검찰개혁이 안 되어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는 정신적 외상이 아직 씻기지 않았는데 검찰이 조직적으로 저항을 하니 다시 촛불을 들고 일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집회가 ‘중도’와 ‘선명 진보층’까지 끌어들이지 못하고 전통 지지층만 결집하는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조국 수호’가 겹쳐 있기는 하지만 초점은 ‘검찰개혁’이다. 서초동 집회를 ‘조국 수호’로 읽어선 안 된다”고 했다. 서초동 촛불을 ‘조국 수호 촛불’로 해석하고 ‘조국을 지키고 조국을 통해 검찰개혁을 하자’는 기조로 흐른다면 자칫 보수세력에게 ‘되치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원철 이주현 이유진 김민제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