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왼쪽 둘째)가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 전 원내대 표, 심 신임 원내대표, 황 대표, 김재원 신임 정책위의장, 정용기 전 정책위의장.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자유한국당의 새 원내대표에 비박(근혜)계 심재철 의원(5선·경기 안양동안을)이 당선됐다. 정책위의장으로는 친박계 김재원 의원(3선·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이 짝을 이뤄 원내지도부가 됐다. 당 안팎에서는 ‘총선을 앞둔 친박의 본능적 생존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친박계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면 ‘퇴행’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만큼, ‘비박계 얼굴’과 ‘친박계 러닝메이트’ 조합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김 정책위의장이 전략에 능한 고수인 탓에, 당의 무게추가 김 의장 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9일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4개 조가 출마한 가운데, 심재철-김재원 조는 1, 2차 투표에서 모두 최다 득표를 했다. 1차 투표에서는 39표를, 2차 투표에서 52표를 얻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가 나오지 않으면서 동점(28표)으로 결선에 함께 올랐던 강석호-이장우, 김선동-김종석 조는 각각 27표에 그쳤다. 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친박 재선인 김선동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며 ‘황심’을 업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개표 결과는 달랐다.
심 원내대표의 가장 큰 승리 요인은 정책위의장 파트너로 티케이(TK·대구경북) 3선이자 친박계 핵심인 김재원 의원을 선택한 점이 꼽힌다. ‘친박 브레인’으로 알려진 김 의원은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 둘 다 신뢰한 당의 막후 실력자다. 중량감을 갖춘 5선 의원이면서 수도권 비박계라는 심 원내대표의 출신 배경이 친박계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당의 분위기와 맞물렸고, 여기에 친박의 실력자와 손을 잡은 것이 시너지를 발휘했다는 얘기다. 한 중진 의원은 “친박 유기준 후보 표가 2차 투표에서 심재철 후보에게 간 데서 볼 수 있듯, 김재원 후보 때문에 심 의원이 ‘친황’으로 인식된 측면이 크다”고 했다.
심 원내대표의 파트너인 김 의원이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에 연루돼 사법처리를 걱정하던 의원들 마음을 파고든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김 의원은 투표 직전 현장 연설에서 ‘내가 내 편이 돼 주지 않는데 누가 내 편이 돼 주겠는가’라는 말을 소개하며 “혁신하고 쇄신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우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의원들이 막판까지 (김재원을 러닝메이트로 삼은) 심재철이냐, 김선동이냐를 고민하던 가운데 (연설을 듣고) 현장 표심이 심재철로 쏠린 것 같다”고 전했다. 국회 정상화 협상이 오후부터 바로 가동되는 상황에서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을 챙겨야 하는 의원들 처지에선 현직 예결위원장으로서 예산안 협상을 도맡아온 김 의원의 전문성과 협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황교안 독주 체제’가 부담스러운 중진 의원들이 황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심재철-김재원 조를 이심전심으로 밀어줬다는 분석도 있다. 단식 뒤 핵심 당직을 측근 인사로 채워 ‘친위체제’를 만들고, 임기 연장을 원하던 나경원 전 원내대표마저 미련 없이 정리한 황 대표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중진들이 5선과 3선의 후보 조합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문제는 의원들이 ‘견제와 안정’이라는 현상 유지를 택한 상황에서 한국당의 과감한 ‘쇄신’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식 협상 창구인 심 원내대표보다 보수색이 뚜렷한 막후 실세 김재원 정책위의장에게 원내의 무게추가 기울 경우, 여당과 원활한 협상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유경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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