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처리·필리버스터 철회
3당 회동에서 합의했지만
의원총회 반발로 추인 못 받아
패트 성과 요구 강경파 입김에
6월에도 합의문 휴지 조각으로
3당 회동에서 합의했지만
의원총회 반발로 추인 못 받아
패트 성과 요구 강경파 입김에
6월에도 합의문 휴지 조각으로
자유한국당 새 원내사령탑의 리더십이 취임 24시간도 되지 않아 도마에 올랐다. “다선의 경험을 협상력으로 보이겠다”며 상대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으나,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에 휘둘리다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의 공조로 예산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교섭단체 간 합의를 번복해 신뢰 위기를 자초했고, 총선을 앞두고 예산 관련 실익도 챙기지 못했다. ‘게도 구럭도 잃은’ 최악의 결과다.
지난 9일 정오, 당선 뒤 첫 행보로 국회의장-3당 원내대표 회동을 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괜찮았다.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꽉 막혔던 여야 협상 채널을 가동하며 ‘예산안 우선 처리-민생법안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철회’에 합의했다. 두 조처가 이행되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오른 개혁법안을 정기국회 안에는 상정하지 않겠다는 국회의장의 약속도 받아냈다. 중단됐던 3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협의체가 즉각 복구되면서 정기국회 종료 전 예산안이 처리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오후 한국당 의원총회는 ‘필리버스터 신청 철회’를 추인하지 않았다. “대안 없이 필리버스터를 어떻게 철회하느냐”는 반발이 쏟아졌다. 2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의원총회에서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필리버스터를 철회하면 오히려 민주당과 ‘4+1 협의체’에 꽃길을 깔아주는 것 아니냐” “철회라는 단어는 정서상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영남권의 한 재선 의원은 10일 <한겨레>에 “첫 상견례 자리에서 합의문을 써 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심 원내대표의 결정이 성급했다”고 꼬집었다. 당 밖에서는 “첫 합의부터 깨버렸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여야 합의안이 한국당 의총에서 잇따라 추인받지 못한 것은 4월 말 패스트트랙 법안 지정 뒤 반년 넘게 지속해온 원내외 투쟁의 성과물을 요구하는 강경파의 입김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만큼 투쟁했는데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이냐”는 조직적인 당내 반발에 여당과의 협상이 공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충돌 이후 장외투쟁을 이어오던 지난 6월에도 교섭단체 3당의 국회 정상화 합의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든 전력이 있다.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합의 처리 △추경안 심사 돌입 △경제 원탁토론회 개최 등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한 뒤 의원총회에 들어갔으나 의원들의 추인을 받지 못했다. 나 원내대표는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고, 불신임 요구에 직면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신임 원내대표로선 협상을 하지 않을 경우 임기 초반부터 여야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고, 자칫 아무런 성과 없이 임기를 끝내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다 보니, 결정 하나하나에 의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상황이 꼬였다”고 진단했다. 반면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1년짜리 예산안보단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우리 미래를 크게 바꿔버릴 수 있다. 새 원내지도부는 시간을 벌어 신중하게 대처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라고 두둔했다.
이날 심 원내대표가 원내수석부대표로 재선인 김한표 의원(경남 거제)을 임명한 것을 두고도 당 안팎에서는 뒷말이 나왔다. 한 초선 의원은 “쇄신의 느낌을 줘도 모자랄 판에 영남권 의원을 앉힌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 라이브_ 성한용의 일침(12월 10일)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와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숙의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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