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석패율제는 어려운 지역에서 정치하는 분들이 회생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였는데, 요즘 얘기되는 건 중진들 재선 보장용으로 악용돼 (도입 취지가) 퇴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논의 중인 선거법 개정안의 석패율제를 문제 삼았다. 선거법 합의가 안 되는 이유가 소수정당 중진 의원들의 석패율제 집착 때문이란 뜻으로 읽히는 발언이었다. 그러자 정의당 등 다른 정당들이 발끈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의당의 유일한 중진인 저는 어떤 경우에도 석패율제로 구제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처럼 석패율제가 중진 구제용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석패율제는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가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에도 들어가 있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각각 225석과 75석으로 하고, 지역구 후보가 비례대표 후보에 중복으로 입후보할 수 있도록 했다. 6개 권역에서 각각 2명 이내에서 최대 12명을 석패율로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의 우려처럼 ‘중진 재선 보장용’으로 악용될 여지를 없애기 위한 ‘봉쇄 조항’도 함께 담겨 있었다. ‘특정 권역에서 한 정당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30%를 넘으면, 그 권역에서 해당 정당은 석패율 당선자를 낼 수 없다’는 조항이 여기에 해당한다. 만약 민주당이 서울에서 지역구 당선자의 30% 이상을 내면 석패율로 권역별 비례대표를 당선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득표율이 취약한 ‘티케이’(TK·대구경북)에서는 아깝게 낙마한 지역구 후보를 석패율제로 구제할 수 있다.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는 석패율제의 취지가 그대로 살아 있는 셈이다.
‘지역구도 완화’라는 석패율제의 취지는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잠정합의안이라며 밝힌 수정안에서도 살아 있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50석으로 줄이면서 석패율제는 ‘전국 단위로 하되, 각 정당이 6개 권역에 대해 1명씩, 총 6명 이내에서 당 판단에 따라 도입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권역별로 작성하는 명부를 ‘전국 단위’로 바꿨을 뿐 권역별로 당선자를 제한하는 것은 똑같다. 또 앞서 얘기한 ‘봉쇄 조항’을 살리면 정당 지지기반이 취약한 지역에서 지역구 낙선자를 구제한다는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지난 4월 논의 때만 해도 쟁점이 아니었던 석패율제가 돌연 협상의 뇌관으로 떠오른 데는 수도권 등 여야 경합지역 출마자들의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수도권에 출마하는 민주당 지역위원장들 사이에서는 정의당 후보가 ‘석패율 당선’을 노리고 선거를 완주할 경우 한국당 후보가 유리해진다는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이 석패율제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맞는다”고 털어놨다. 최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석패율제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한다.
민주당이 이날 정의당에 ‘이중등록제’를 새롭게 제안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타협안으로 풀이된다. 이중등록제는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에 출마할 수 있는 제도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비례대표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민주당 처지에선 이중등록제가 석패율보다 경합지역 접전 사례를 줄일 수 있어 부담이 적다. 민주당의 ‘물밑제안’을 받은 정의당도 내부 검토에 일단 들어간 상태다.
서영지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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