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번지 서울 종로 선거구에 출마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부인 김숙희씨(왼쪽 사진)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와 부인 최지영씨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 교남동 제3 투표소와 혜화동 제3 투표소에서 각각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은 누군가에겐 좌절의 무덤이지만 누군가에겐 도약의 발판이다. 특히 대선을 꿈꾸는 이들은 피해 갈 수 없는 시험대다. 험지에서, 혹은 버거운 상대와의 싸움에서 살아난 이들은 대권을 꿈꿀 자격을 움켜쥔다. 그러나 ‘지역구에서조차 선택받지 못한’ 패자는 치명상을 입는다.
■ ‘정치생명’ 걸린 차기 주자의 대결
일찌감치 다음 대권 구도가 만들어진 곳은 ‘서울 종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각각 여야를 대표하는 대권주자 1위로 꼽힌다. 초반부터 종로에서 승기를 잡은 이 위원장은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종로 밖으로 나가 전국을 누비며 민주당 후보 지지 유세를 벌였다. 후원회장을 맡은 후보만 40여명에 이른다. 종로에서 황 대표를 이기고, 민주당이 통합당을 여유롭게 누르면 ‘이낙연 대세론’은 날개를 달게 된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 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는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정권 4년차 이후 치르는 선거는 정권심판 선거다. 민주당은 총선을 ‘차기 대권구도’로 만들기 위해 일찌감치 이 후보를 종로에 공천한 것”이라며 “이기면 그대로 차기 대선주자가 되지만, 지면 그대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권심판 적임자를 강조하며 종로에 출마한 그가 ‘미니 대선’에서 대역전극을 펼친다면 단숨에 독보적인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상대 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를 꺾었다는 후광 효과가 이어지면서, 취약했던 당내 입지도 순식간에 강화할 수 있다. 사실상 보수의 유일한 희망으로 대세론으로 향하는 길을 닦을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한다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최근 ‘차명진 망언’으로 불거진 공천 책임론이 선거 패배 책임론으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당내 세력 탓에 정치적 존재감도 급속히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다만, 본인이 종로에서 패하더라도 통합당이 나쁘지 않은 총선 성적표를 받게 되면 회생의 여지가 있다.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105석, 비례대표 17석 등 총 122석을 얻었다. 전문가들은 통합당이 민주당에 패하더라도 20대 총선 때보다 많은, 지역구 105석 이상을 얻으면 선전한 볼 수 있다고 본다. 자신에게 불리한 지역구에 출마하는 희생을 치르면서도 보수 회생에 힘을 보탰다는 공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역구 의석수가 두자릿수로 줄어들면 황 후보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다.
■ 여야 ‘예비 잠룡’들의 운명은?
차기 당권 또는 대권에 다가갈 수 있는 주요 정치인들도 이번 총선은 운명의 갈림길과 마찬가지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수성갑에서는 민주당 김부겸 대구·경북 선대위원장과 통합당 주호영 후보가 ‘4선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2일 출정식에서 “총선을 넘어 대구를 부흥시키고, 지역주의 정치와 진영정치를 청산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확실히 개혁하는 길을 가겠다”고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큰 인물’론으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대구에서 승리를 일구면 그의 선언은 ‘말’을 넘어 현실적인 질량감을 얻게 된다. 지역주의를 깬 상징성을 얻는 동시에, 영호남을 아우르는 정치인의 무게감이 더해질 것이다.
정치적 명운을 걸고 고군분투하는 후보는 영남에 또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3선의 김영춘 민주당 후보(부산 부산진갑)는 부산시장과 4선을 지낸 서병수 통합당 후보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 역시 이긴다면 지역주의를 극복한 상징성과 함께 행정경험까지 갖춘 대선 주자급으로 도약할 수 있다.
경남 양산을에서도 이번 선거 다음을 바라보는 김두관 민주당 후보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다는 상징성 때문에 민주당은 김 후보를 낙점했다. 이미 경남지사를 지낸 김 후보가 나동연 통합당 후보를 따돌리면 지역구 승리 이상의 미래를 챙길 수 있다. 강원 원주갑에 출마한 이광재 강원도 선거대책위원장도 자신의 선거는 물론 보수 색채가 강한 강원 지역의 승리를 이끈다면 오랜 공백을 털고 차기 당대표나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통합당에서는 오세훈 후보(서울 광진을)가 비상을 꿈꾼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민주당 후보를 꺾는다면 문재인 정권 심판이라는 명분을 챙기고, 화려한 각광을 받을 수 있다.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통합당의 내부 사정상 승리는 곧 보수의 대표 주자라는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서울시장 중도 사퇴 뒤 멈춘 대선 트레킹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대구 수성을에 출마한 홍준표 무소속 후보도 이길 경우 대선 재수에 도전할 동아줄을 잡을 수 있다.
■ 여야 총선 ‘총사령관’의 행보는?
여야의 총선을 지휘한 ‘총사령관’들의 다음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미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지 정계 은퇴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후 대선 과정에서도 역할을 할 것”이라며 “총선 뒤엔 자서전 집필에 주력한다는 계획이지만, 대통령 직속 위원회 등 정부에서 일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패배한다면 비례위성정당 창당, 검증이 부실했던 비례대표 영입 등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의 다음 행보도 관심거리다. 통합당이 승리하거나 110석 이상을 얻는 성과를 거두면, ‘선거 족집게’ ‘총선 승리 청부사’ ‘여의도 차르’ 등의 명성을 재확인하면서 통합당 내 입지를 다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 심판론을 앞세워 무력했던 보수 표심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 벼랑 끝에서 승리를 이끌었다는 찬사도 받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총선 이전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어서 통합당 선거를 도와야겠다고 해서 왔지만,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원래 위치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승리할 경우 그는 계속 여의도에 남아 2년 뒤 대선을 내다보는 보수진영의 설계도를 작성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통합당이 패배한다면 2012년 대선, 2016년 총선에서 일군 화려한 승리의 역사는 2020년 총선에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서영지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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