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2일 ‘자발적 기부금 모집’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지키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기획재정부의 입장을 일부 수용하는 일종의 절충안이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꺼내든 타협안이 실제 어떻게 구현될지는 당정 간 세부 조율과 여야의 추경안 심사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과거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자발적 ‘국난극복 캠페인’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참여 폭이 커질수록 재정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재난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반납’한 지원금으로 ‘일자리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국민들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불확실성이 크지만, 새로운 상생 모델을 만들어볼 수 있다는 취지다. 코로나19 방역 성공으로 한껏 높아진 국민들의 자긍심이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원동력으로 이어지는 상승효과도 기대할 만하다. 이에 당정은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대적 캠페인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방안이 최종 확정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에 이어 국회의원들도 참여하면서 캠페인을 벌이면 시민들 사이에서 기부 운동이 펼쳐질 수도 있다. 시민들을 믿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앞으로 지원금을 수령하지 않고 기부하겠다고 표명하는 고소득층, 사회지도층이나 국민이 많아지고 캠페인이 일어난다면 그만큼 추가적인 재정 소요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민주당은 자발적 반납분을 기부금으로 인정해 연말에 기부금 세액공제를 적용해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재난지원금 기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법정기부금’으로 분류될 수 있다. 법정기부금은 소득 범위 내에서는 전액을 공제 대상으로 인정한다. 소득이 100만원이고 법정기부금을 120만원 내면, 100만원까지 공제 대상으로 인정해 15%의 공제율을 적용해준다. 만약 4인 가구에 해당하는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할 경우, 15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절차가 현실화하기엔 상당히 고난도의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먼저 정부를 기부금품 모집 대상으로 삼으려면 올해 7월 정부가 마련할 내년도 세법개정안에서 관련 규정을 담아야 한다. 모집된 재원을 고용보험기금 등 정부 재정의 어떤 계정에 이전해 어떤 사업에 활용할지 결정하는 일도 기금운용계획 등 관련 규정을 정비한 뒤에야 가능하다. 가구 단위로 지급한 지원금을 개인의 과세로 환급하는 과정에서 혼란도 예상된다. 예컨대 부부가 맞벌이 근로소득자인 4인 가구가 100만원을 기부할 경우, 근로소득자 1명에게 100만원의 기부금액을 인정할 것인지, 25만원만 인정할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기부금 세액공제 혜택은 연말정산을 하는 이들에게만 돌아간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이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반납하더라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재난지원금 기부 활성화를 위해선 기부금 세액공제에 준하는 별도의 환급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서 발표한 게 아니라서 정확한 건 기재부와 협의해봐야 한다”며 “현행법으로도 저렇게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보지만 필요하다면 법 개정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반납운동’이 얼마나 재정 부담을 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1조원 정도를 아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1조원을 아끼려면 무려 100만명이 참여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고 연말정산을 통해 선별 환수하는 방안을 애초부터 고민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뒤늦게 지급 범위를 확대하면서 굉장히 어렵게 꼬아놓은 상황”이라며 “현재 발표된 안건은 아이디어 수준인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제도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디테일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코로나19 여파가 워낙 커서 긴급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지원 대책은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되는 셈인데, 첫 현금성 지원 과정에서 너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점은 향후 정책 설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현웅 김원철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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