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 유지된 것을 두고 여당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선 중진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드리고 재추진하겠다”며 “공정거래법상 전속고발권을 폐지했어야 한다. 공정위의 재벌 감싸기가 도를 넘었고 그에 대한 견제를 위하여 시민들에게도 고발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고, 오래된 경제개혁 과제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이어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를 재추진하여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덧붙였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포함한 ‘공정경제 3법’ 통과에 대해 “공정경제 3법도 상당한 수준에서 공정경제를 이뤄가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이 취해졌는데 그중에 아쉬운 점들이 있다”며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어제 (민주당) 의원총회를 통해서도 충분히 문제 제기가 돼서 향후에 그런 문제점을 보완해가기 위한 논의를 더 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정경제 3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또다른 숙제가 남았다. 상법은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3% 조항이 최대주주 합산이 아닌 개별 방식으로, 공정거래법은 전속고발권 폐지 부분이 삭제된 채로 통과됐기 때문이다”며 “민주당 선배, 동료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3%룰 최대주주 합산과 전속고발권 폐지를 반영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재발의를 논의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고 적었다. 실제 9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긴 전속고발권 유지 등에 대한
의원들의 비판이 거셌다고 한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기업 간 담합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 있는 제도로, 공정거래법 제71조에 명시되어 있다.
▲<공정거래법> 제71조(고발)
①제66조(벌칙) 및 제67조(벌칙)의 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②공정거래위원회는 제66조 및 제67조의 죄 중 그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하여 경쟁질서를 현저히 저해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검찰총장에게 고발하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때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대선 공약집에 “공정하지 않은 공정거래 감시, 전속고발권 폐지와 공정위 역할 강화로 해결하겠다”며 “공정거래법 등의 법 위반행위로 피해를 입은 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높이고 상대적 약자들의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상 여당이 대선 공약을 정면으로 어긴 셈이다.
전속고발권이 유지된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 과정에서
‘꼼수’ 논란도 일었다. 애초 정부가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중대담합의 한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8일 저녁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참여한 가운데 안건조정위를 열어 전속고발권이 폐지된 정부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의 신청으로 열린 안건조정위는 6명 중 4명의 의결이 필요한데, 민주당(3명)이 전속고발권 폐지 입장인 배 의원의 동의를 얻어 안건조정위를 통과시킨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여당 의원이 절반 이상인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안건조정위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수정해 전속고발권을 부활시켰고 이 법안을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이에 정의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10일 당 상무위원회 머리발언에서 “우리당 배진교 의원에게 거짓된 행동을 보이면서까지 전속고발권을 유지한 더불어민주당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자신들의 공약까지 뒤집으며 재벌들의 편의를 봐주는 데 앞장선 민주당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전속고발권 유지의 이유 중 하나로 ‘검찰권 비대화’를 들고 있다. 중대담합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독점적으로 고발하지 않아도, 시민단체·소액주주 등의 고소·고발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이날 <와이티엔>(YTN) ‘황보선의 출발새아침’에 출연해 “검찰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검찰권을 약화하는 견제와 균형(을 위해) 검찰개혁을 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큰 권력을 주는, 경제 권력까지 넘어가게 할 수 있는 수사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검찰개혁에 역행한다고 지적하시는 분이 (당내에)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제도 아래서도 공정위는 ‘법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하여 경쟁질서를 현저히 저해한다고 인정하는 경우’ 사건을 검찰총장에게 고발하게 되어 있어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속고발권 제도가 유지되어도 공정거래 사건 수사는 검찰이 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에서 밝혔듯 전속고발권 폐지의 쟁점은 수사 주체가 아니라 고발 주체다. 공정거래 사건 피해자나 관련자들이 사건을 직접 고소·고발할 수 있도록 해 공정위의 ‘기업 감싸기’를 견제하고 상대적 약자들을 보호하자는 것이 전속고발권 폐지의 취지인 것이다. 민주당은 전속고발권 유지의 또다른 이유로 소송 대응 능력이 적은 중소기업이 고소·고발 때문에 부담을 크게 가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우려에는 근거가 있다.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보면 최근 3년(2016~2019년)동안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기로 의결한 98건의 유형별·사업자별 통계를 보면, 대기업이 가담한 담합사건은 10건이었으며 중견·중소기업 관련 담합사건은 88건이었다. 다만 이런 결과가 공정위의 대기업 봐주기 때문에 벌어진 착시효과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더구나 정부가 처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모든 불공정 행위가 아닌 경성담합(가격담합·공급제한담합·시장분할담합·입찰담합 등 중대 담합)사건에 대한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내용이다. 죄질이 나쁜 불공정행위이기 때문에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 제출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전속고발제 개편 이유
1) 부당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경쟁제한의 폐해가 커서 신속하고 엄정한 조치가 필요한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하여 형사처벌이 제한되는 결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
2) 검찰의 강제수사력을 활용하여 신속하고 엄정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당한 공동행위 중에서 중대·명백한 공동행위(가격담합, 공급제한담합, 시장분할담합, 입찰담합 등 소위 경성담합)에 대해서는 검사가 직접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청 간에 사건 관련 자료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함.
조영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속고발권이 폐지된다고 검찰권이 비대해진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전속고발권이 유지된다고 해도 공정위는 불공정행위 수사를 검찰에 고발하게 되어 있다”며 “오히려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법안을 손 봐서 피해자들이 경찰 등 여러 수사기관에 고소·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불공정행위 수사를 검찰에 집중시키지 않고 분산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 피해와 관련해선 “대기업 담합 사건과 관련한 공정위 고발이 적은 것은 대기업 봐주기일 수도 있다. 또 경성담합(중대담합) 사건의 경우 공정거래 질서를 해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기업의 규모가 작다고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소기업 피해 우려는 정부가 사전 교육과 법률 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을 통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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