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첫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제기했다가, 불과 이틀 만인 3일 “국민과 당원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물러섰다. 사실상 거둬들인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다”고 말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재상고심이 있는 이달 14일까지 당내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상당수 최고위원은 사면을 위해선 당원과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간담회 뒤 최고위원들도 ‘잔불 진화’ 모드로 전환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최고위원은 “이 대표는 (사면론을)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려던 건 아니고 평소 통합의 정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며 “14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나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틀림없이 부담으로 작용할 테니 (국민통합을 위한) 충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최고위원은 “이 대표의 충정은 이해하나 지금은 사면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는 데에 공감을 이뤘다”며 “이 대표가 ‘적절한 시기’라고 했는데 그게 언제인지 정해진 건 아니다. 언젠가 나올 이야기를 원칙적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현재로선 중요하다”고 지도부의 ‘단합’을 강조했다.
이 대표로선 서둘러 사면론을 접어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는 했다. 하지만 당 대표가 무게를 두고 꺼낸 사면론을 당내 반발로 곧바로 접은 모양새여서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또 평소 신중한 이미지에도 흠집을 남겼다. 더욱이 사면론을 꺼낸 시점이 새해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당내 대선 후보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뒤진 결과가 나온 시점과 맞물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이 대표로선 ‘중도 확장’을 위해 던진 정치적 승부수가 당내 역풍에 휘말려 차기 주자의 입지마저 흔들렸기 때문이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는 격이 된 셈이다.
특히 이 대표의 지지층인 호남과 친문 쪽에서 더 거센 반대가 나왔다. 이 대표의 지지 기반이 그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게 드러난 측면도 있다. 여론과 당내 반발이 거세자, 이런 의견을 곧바로 수렴해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섰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대선 가도의 1차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오는 14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어차피 사면 논의가 이슈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를 선제적으로 대처한 측면이 있다며, 애써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일부 있다.
이지혜 정환봉 서영지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