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 계엄령 문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3월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서울서부지검으로 압송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기우전(57) 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 5처장에게 항소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3부(재판장 소병석)는 17일 공전자기록 등 위작, 허위 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기소된 기 전 처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기무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앞둔 2017년 2월 계엄티에프(TF)를 꾸리고 박 전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를 대비해 위수령 발령 및 계엄령 선포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엔 탄핵 심판이 기각됐을 때 이에 분노한 촛불 시위대가 청와대, 정부 청사 등을 점거하는 등 ‘소요’가 일어나면 위수령, 계엄령을 발동한다는 군의 시나리오가 적혔다.
기 전 처장은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티에프(TF) 업무와 무관한 ‘방첩 수사 연구 계획’ 내용을 담은 허위 공문서를 작성, 인력 파견·예산(특근매식비)을 신청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계엄령 검토 문건을 ‘훈련 비밀’로 등재하기 위해 문건 제목 일부를 ‘훈련에 관련된 것’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한 혐의(공전자기록 등 위작교사)도 받았다.
1심 재판을 맡은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2019년 12월 기 전 처장 등에게 “계엄 문건 은폐 시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부분이 유죄라며,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기간과 참가자, 장소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한 지침을 주고 (연구 계획) 문서를 작성해 담당 공무원에게 발송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계엄의 전반적 사항을 검토하는 것은 기무사 직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기 전 처장은
당시 기무사령관(조현천)의 계엄령 검토 지시에 따라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함께 기소된 소강원 전 기무사 부대장 역시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또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전아무개 육군 중령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가 확정됐다.
이날 군인권센터는 “법원이 계엄 문건의 위법성은 물론,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은폐하는 데 관여한 주요 인사들의 범죄 혐의를 다 인정한 것”이라며 “문제는 검찰이 아직도 계엄 문건 작성을 모의·결정한 조현천 전 사령관 등 상층부 수사에 미적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내란음모죄의 피고발인으로 조 전 사령관과 계엄 모의를 공모한 것으로 의심되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소환이라도 한 것은 맞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이어 “촛불 시민을 짓밟기 위한 내란음모에 가담한 모두를 조속히 기소하여 법의 심판대 앞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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