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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허들’ 낮춘 대출지원이 답일까? 서울시장 후보 ‘현금복지’ 공약 검증

등록 2021-04-01 04:59수정 2021-04-01 08:48

서울시장 후보 ‘현금복지’ 공약 검증
박영선 청년에 5000만원, 오세훈 소상공인 1억원…‘허들’ 낮춘 대출지원, ‘빚수렁’ 우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펼침막이 지난 30일 밤 서울 양천구 지하철 5호선 목동역 근처 네거리에 걸려 있다.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펼침막이 지난 30일 밤 서울 양천구 지하철 5호선 목동역 근처 네거리에 걸려 있다.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공언하며 ‘금융지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후보는 소상공인을 위한 무이자 대출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청년을 대상으로 한 현금 지원 공약도 과감한 규모로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가능한 두터운 현금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평소라면 ‘돈 선거’ 혹은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나올 법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당장의 위기를 견딜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후보의 금융·현금지원 공약은 “채무의 위험성 등 종합적 검토가 부족한 무책임한 공약”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상공인에게 무이자 대출 지원

박 후보와 오 후보가 공통으로 내민 소상공인 지원책은 ‘무이자 대출’이다. 담보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도록 서울신용보증재단(서울신보)이 보증을 해주고, 서울시가 이자를 대신 내주는 방식이다. 박 후보는 모든 소상공인에게 최대 5천만원, 집합금지·영업제한 대상 소상공인에게는 임차료를 2천만원까지 대출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오 후보는 ‘대출의 허들’을 대폭 낮춰 무이자·무보증·무담보·무서류로 최대 1억원까지 빌려주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의 깊은 수렁을 감안하면 ‘소상공인 대출 지원’은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재정 여력이 크지 않아 직접적 현금지원을 할 수 없다면, 금융지원으로라도 자영업을 지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두 후보 모두 “대출의 위험성”은 고려하지 않아 “무책임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내만복)의 한영섭 정책위원은 “금융지원은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부실한 자영업을 계속 유예시켜 문제를 키우게 될 수도 있다. 대출로 기사회생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부채의 늪에 빠지기만 할 가능성도 크다”며 “대출의 출구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채무조정제도가 함께 설계됐어야 하는데 두 후보 모두 이 부분은 빠져있다”고 짚었다.

서울신보의 지원여력이 포화상태인 것도 문제다. 올해 서울신보의 보증공급목표는 3조5천억원인데 지난 30일까지 1조9282억원의 보증지원이 이뤄졌다. 보증공급 석 달만에 연 목표액의 절반이 소진된 셈이다. 이미 지난해 서울신보 운용배수(기본재산으로 창출 가능한 보증규모)는 10.2배로 적정수준(8.5∼10배)을 벗어났다.

두 후보는 모두 서울신보에 대규모 출연을 예고하고 있다. 박 후보 쪽은 소상공인 무이자 대출과 임차료 대출을 위해 2489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지원해 보증지원을 3조원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오 후보 쪽은 애초 서울신보가 계획한 700억원의 출연금 예산을 1400억원으로 2배 늘려 신규 보증 규모를 2조원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출연금 조성 계획은 서울시 119억, 자치구 40억, 금융회사 541억원으로 총 700억원인데 서울시에서만 출연금을 늘린다고 가정하면 출연금은 1219억원으로 늘어난다.

박 후보는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지원 외에 현금지원 공약도 내세웠다. 임대인이 소상공인의 임대료를 30% 감면할 경우에 감면액의 절반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필요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결국 임대인이 15%의 임대료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 유인이 없다”는 한계점이 지적된다. 박 후보는 소비 진작을 위해 모든 시민에게 10만원씩 디지털 화폐로 ‘재난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청년 표심, 현금 공약으로 사겠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등장한 현금성 지원 공약의 상당수는 청년이 대상이다. 기존의 청년 대상 정책은 주로 일자리 지원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번엔 주거와 금융지원까지 그 내용이 다양해졌다.

오 후보가 제시한 청년 월세지원 확대 공약은 그의 개발 중심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앞뒤가 다르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 후보는 현재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청년 월세지원’을 큰 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중위소득 120% 이하의 청년(19∼39살) 1인 가구에 10개월간 20만원씩 월세를 지원하는데 애초 5천명이던 지원 규모를 5만명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한영섭 내만복 정책위원은 “오 후보는 한쪽에선 청년 월세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집값 상승을 불러올 부동산 개발 정책 위주”라며 “단기적 처방으로 청년에게 도움되는 것 같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굉장히 기만적”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와 함께 서울시장 부동산 공약을 검증한 ‘집걱정없는 서울만들기 선거네트워크’는 오 후보의 청년주거 정책이 허술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 후보는 역세권·대학가,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5년간 10만호의 역세권 청년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이는 민간주택 소유자들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가 제시한 ‘청년 출발자금’ 공약은 ‘소상공인 무이자 대출’과 마찬가지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대출의 위험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년 출발자금은 19∼29살 청년들에게 단 한 번 필요할 때 5천만원을 무이자 대출하고 30∼40살 사이에 원금만 갚도록 하는 금융지원 정책이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미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등 문제를 겪는 청년이 많다”며 “현실적으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어떻게 감당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세훈 안심소득, 고작 200가구만?

오 후보는 과거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시장직을 내려놓은 과거를 의식한 듯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보편적 소득보장제도인 ‘안심소득’을 들고 나왔다. 안심소득은 중위소득보다 소득이 적은 가구에 미달액의 절반을 채워주는 방식의 소득보장제도를 말한다. 4인 가구 중위소득이 연 6천만원이라고 가정하면, 4천만원을 버는 가구에는 미달액(2천만원)의 절반인 1천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보다 지원 규모가 크고 대상도 넓다.

안심소득은 전국에 적용하면 연 53조원, 서울시민에게만 적용해도 연 4조4천억원이 소요되는 정책이다. 상당히 구체적이고 과감한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빈 공약이 될 수밖에 없다. 오 후보는 재원 마련 계획을 내놓는 대신 연 40억원을 들여 단 200가구만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샀다. 나아가 200가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안심소득 자체는 보수 정치인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담대한 복지 공약”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오 후보는 서울시장의 권한을 넘어서는 공약을 내놓고 ‘200가구 실험’으로 퉁치고 있다. 정작 중요한 서울시 빈곤층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수정당 후보들은 ‘기본소득’ 공약으로 와글와글

기본소득당·민생당은 ‘서울형’, 미래당은 ‘청년’

허경영, 기본소득 반대하면서도 ‘연애공영제’ 20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양강구도’가 굳어진 가운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소수정당 후보들 사이에선 ‘기본소득’이 가장 뜨거운 이슈다. 이들은 지난 29일 소수정당·무소속 후보 토론회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를 주고 받았다. 기본소득 실현을 전면에 내세운 ‘원이슈 정당’인 기본소득당을 비롯해 미래당, 민생당 등의 후보들이 기본소득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호 6번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는 ‘서울형 기본소득’을 공약했다. 모든 서울시민에게 나이나 소득·자산·노동 여부를 심사하지 않고 월 25만원씩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신 후보는 서울시의 불필요한 토건 예산 761개 항목을 절감하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실시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토지세와 탄소세 등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입법 과제도 당 차원에서 추진할 예정이다.

‘청년 정당’을 표방하는 미래당의 기호 8번 오태양 후보는 ‘청년 기본소득’을 약속했다. 만 19∼34살 청년에게 원하는 시기에 3년 동안 매달 최저생계비 수준(105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모든 시민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제공되는 ‘범주형 기본소득’이다. 오 후보는 또 만 19살 청년 8만명을 대상으로 1인당 월 100만원씩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2008년 기본소득론을 국내에서 처음 주창한 기호 9번 민생당 이수봉 후보도 ‘서울형 기본소득’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후보는 청년(25∼35살), 중년(36∼50살), 장년(51∼60살)으로 생애주기를 나눠 주기별로 1년씩 월 80만원의 생애기본소득청구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기존 청년수당 예산 603억원을 비롯해 기존 직업훈련예산 등으로 재원을 충당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가혁명당의 기호 7번 허경영 후보는 “기본소득은 국민을 거지 취급하는 것”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본소득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허 후보는 만 17살 이상의 모든 서울시민에게 매달 20만원의 ‘국민배당금’을 지원하고 ‘연애공영제’를 위해 19살 이상 비혼자에게 매달 20만원의 연애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허 후보는 이를 위해 서울시 예산의 70%를 절감하겠다는 황당한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지혜 박태우 장나래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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