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7일 청와대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와 모여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확장 재정을 요구하는 의견과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의 확실한 반등과 코로나 격차 해소를 위해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제공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놓고 다시 여당과 정부가 충돌 양상을 보이자, 청와대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4월 ‘전국민’ 지급과 ‘소득 하위 70%’를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였던 상황이 이번에도 재연될 경우 당정 간 갈등관리에 취약한 임기말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통령 임기는 1년도 채 안 남았지만 범여권이 180석인 국회는 3년이나 남았다. 청와대가 전국민 지급에 부정적이라고 하더라도 국회 논의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아무리 여당이 압박하더라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퇴하는 등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청와대는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전국민’보다는 이전에 당정이 합의했던 ‘소득 하위 80%’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줬다”며 “정부 지원도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더 많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2차 추가경정예산안 국무회의 의결 직후 코로나 4차 대유행이 번지자, ‘전국민’ 보다는 영업활동에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지원에 주력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여당이 이미 전국민 지급을 당론으로 결정한 이상 국회 논의를 조심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번엔 대선 주자들이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에 대해 각기 다른 판단을 내놓고 있어 청와대 입장을 밝히는 데도 부담이 따른다. 이에 기획재정부와 여당의 충돌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만을 바라는 모습이다. 홍 부총리는 13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재정 운용은 정치적으로 결정되면 따라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위 20% 계층은 소득 감소가 거의 없었던 만큼 하위계층에 줄 돈을 줄여서 5분위(상위) 계층에 줘야 한다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는 계속 반복된 당정 간 대립 지점이었다. 지난해 4월에도 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전국민 지급을 추진하자, ‘곳간지기’를 자임한 홍 부총리가 완강하게 반대해 극한 대립이 벌어졌다. 충돌이 장기화하며 청와대 책임론이 제기되자,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중재에 나서 ‘전국민 지급론’이 제기된 지 16일 만에 가까스로 갈등을 수습한 바 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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