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선출한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행정부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 몰아낸 사건은 2015년 대한민국 정치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타고난 승부사’, ‘치킨게임의 강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한번 승리했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패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유승민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으면서 새누리당 사람들은 적잖게 당황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를 내세워도 박근혜 대통령이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쏟아낸 ‘배신자’ ‘심판’ 등의 언사는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보수 성향 신문들도 어지간히 놀랐던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설과 칼럼이 여러 편 등장했습니다.
사태가 일단락된 뒤 9일 아침 <동아일보> 1면 기사의 제목은 ‘유승민 혼란 끝…대통령이 변할 차례다’였습니다. 이 신문은 ‘유승민 내친 박 대통령과 여당, 위기는 시작됐다’라는 제목의 사설도 실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유 사퇴, 모두 권력정치 그만두고 국정개혁 올인하라’는 사설을 썼습니다. 일종의 양비론이지요. 이 신문은 전날 ‘유승민 파동, 보수의 길을 가리키다’(윤평중 칼럼)와 ‘유승민은 여의도 야합정치의 몸통이다’(조우석 시론)라는 정반대 시각의 칼럼을 동시에 싣기도 했습니다. 당사자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보수 성향의 논객들도 이번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유승민 원내대표는 물러났고 이제 이번 사건을 정확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단을 제대로 해야 처방이 올바로 나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원내대표 숙청 사건’은 헌법 위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일까요?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재의를 요구했습니다.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정당의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원내대표직에서 쫓아낸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정확한 명칭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원내대표 숙청 사건’이라고 해야 합니다. 왜 헌법 위반인지 설명하겠습니다.
몇몇 논객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 원내대표가 국정에 대해 공동책임을 져야 하고 원내대표는 대통령을 뒷받침해야 하므로 유승민 원내대표가 잘못했다고 주장합니다. ‘대통령-집권당 동일체 원칙’이나 ‘국정수행 상명하복의 원칙’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습니다. 그럴듯한가요? 아닙니다.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사상식사전을 찾아 보면 내각책임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행정권을 담당하는 내각이 의회 다수당의 신임에 따라 존속하는 의회중심주의의 권력융합 형태로, ‘의원내각제’라고도 한다. 영국에서 발달됐으며, 미국에서 발달한 대통령중심제와 함께 민주사회의 대표적인 정부 형태 중 하나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된 지난 2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세 사람은 2005년 당대표(박근혜), 사무총장(김무성), 대표 비서실장(유승민)으로 만난 인연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중심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엄격히 분립시켜 상호 간에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른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한 제도다. 대통령제 또는 대통령책임제라고도 한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며, 행정부와 입법부는 뚜렷하게 독립되어 있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모든 정책을 수행한다.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 의회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다.”
쉽죠? 새삼스럽게 대통령제 얘기를 끄집어낸 이유가 있습니다. 대통령제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엄격히 분립시켜 상호 간에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첫번째 특징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숙청한 이번 사건은 대통령제 운용 원리에 명확히 위배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제에서 ‘유승민 잘못’ 주장은 엉터리
민주화 역행…‘독재 모델’에서나 가능 한 일
이번 사건에 대해 ‘공동책임론’이나 ‘상명하복’을 들어 박근혜 대통령을 두둔하는 논객들의 주장은 우리나라가 내각책임제 국가라면 그나마 조금 일리가 있을 수도 있는 얘기입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내각제는 집권당이 정부를 구성한다. ‘응집모델’이라고 한다. 대통령제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각각 자율성을 갖는다. ‘분리모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제를 시작했기 때문인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도 대통령 권력이 입법부와 집권당을 압도했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는 입법부의 자율성과 정당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집권당이 정부 운영에서 대통령과 함께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퇴시킨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화 이후 가고 있는 방향에 명백히 역행하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이 입법부와 집권당을 압도하는 과거의 모델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모델이다. 작동할 수도 없고 작동해서도 안되는 모델이다. 이번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에게도 비극적인 일이 될 것이다.”
박상훈 대표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모델’이라고 지칭한 것은 거칠게 말하면 ‘왕정 모델’, ‘독재 모델’일 것입니다. 정두언 의원이 “우리나라에서 군정은 종식됐지만 왕정은 종식되지 않았다”고 말할 때 바로 그런 개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두둔하는 논객들이 주장하는 공동책임론은 사실 대통령을 왕위에 올려놓은 왕정모델에 기반한 엉터리 이론이라는 얘깁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제의 가장 기본적 원리인 대통령과 의회의 분립, 견제와 균형을 지키지 않고 지금을 왕정시대, 유신시대로 착각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오바마 리더십’ 보면 제도 탓 아닌 사람 탓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 사건을 박근혜라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제라는 ‘제도’의 문제로 보려는 시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지난 7일 ‘대통령제, 수명 다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파열음 현상은 대통령중심제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건국 이래 70여년 유지해온 대통령 중심의 통치 체제가 그 역할과 수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회의와 피로감이 함께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권력이 너무 한곳에 몰려 균형이 깨진데다 너도나도 대통령하겠다는 싸움이 잦고 게다가 한번 선택하면 꼼짝없이 5년이 묶여버리는 이 낭패감 때문이다.”
그런가요?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원내대표 숙청이 대통령제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요? 최근 사태를 대통령제라는 제도 탓으로 돌리려는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중대한 오류를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첫째, 김대중 고문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독재체제를 대통령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공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독재와 부정선거, 군사쿠데타, 유신체제는 대통령제가 확실히 아닙니다.
둘째,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했나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우리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다섯 사람의 대통령을 경험했습니다. 이 가운데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했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다면 다른 나라의 대통령제도 실패해야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몰아 쫓아내고 있던 시기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 극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두 나라에서 대통령이 완전히 다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문화일보>는 6월29일치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조목조목 비교한 뒤 이렇게 썼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참모들과 함께 우산을 쓰고 가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현대 민주국가에서 국가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은 분노의 표출이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끝없는 설득과 소통을 통해 행사될 수밖에 없다.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 큰 울림을 준 오바마 대통령의 노래는, 지도자가 진정성을 갖고 노력하면 결국 국민이 호응하게 된다는 자명한 이치를 새삼 보여주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를 ‘박근혜의 실패’가 아니라 ‘대통령의 실패’로 몰고 가려는 시도는 옳지도 않고, 실현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대통령제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를 내각제로 바꾸자는 주장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원내대표 숙청 사건을 가지고 ‘제도’ 탓을 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근혜에 놀란 보수 기득권, 내각제 주장도 자기모순
내각제 주장과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직까지 내각제가 아니라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까닭은 우리나라 보수 기득권 세력이 꾸준하게 퍼뜨려온 반정치주의 때문입니다.
반정치주의는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기대를 걸지 못하게 하거나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냉소주의를 강화시키는 태도나 경향”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반정치주의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반정치주의는 분명한 권력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라고 박상훈 대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정치주의를 확산시키는 세력은 누구일까요? 재벌, 관료, 언론 등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입니다. 이들은 정치를, 특히 국회와 정당을 끊임없이 폄하함으로써 공직선거 투표율을 떨어뜨리고 그렇게 해서 방치된 권력을 자신들이 좌지우지합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국회와 정당을 폄하해 반사이득을 취하던 기득권 세력 가운데 일부가 지금 국회와 정당에 권력을 통째로 넘겨주는 내각제를 주장하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박근혜 사태’의 충격이 어지간히 크긴 컸던 것 같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