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정원 감청 허가권자
4개월마다 보고받았을 가능성
해킹 논란서 자유롭지 못해
‘진상규명 위한 결단 필요’ 지적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을 통한 사찰 의혹이 커지고, 이 프로그램 운영을 담당하던 국정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정국이 ‘해킹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지만, 국정원의 최종 지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20일까지 침묵을 이어갔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며, 국정원의 대테러·대공 감청의 최종 허가권자 역시 대통령이다.
국정원법 제2조는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간첩이나 테러리스트 의혹을 받고 있는 북한 국적자를 비롯한 외국인에 대한 감청 허가를 4개월에 한번씩 대통령으로부터 받는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이날 오전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출연해 “(감청은) 대통령 허가를 받아서 하는 사항이다. 건건이 받을 수 없으니까 4개월마다 한번씩 받는다. 4개월마다 대통령께 이런 이런 대상자에 대해서는 감청을 하겠다는 것을 보고한다”고 밝혔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대한민국에 적대하는 국가, 반국가활동의 혐의가 있는 외국의 기관·단체와 외국인,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사실상 미치지 않는 한반도 내의 집단이나 외국에 소재하는 그 산하단체의 구성원의 통신인 경우 서면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을 통한 감청은 해외에서만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해외를 대상으로 한 도·감청의 최종 승인권은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정원 해킹 및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정원 논란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따로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해킹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 쪽의 보고를 수시로 받으며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국정원이 ‘결코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며 국회 정보위원회의 현장조사를 ‘역제안’하고, 국정원 직원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공세적으로 ‘결백’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도 청와대가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배경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오히려 논란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며 “국정원이 저렇게 결백을 주장하니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국정원 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조해왔다. 박 대통령은 특히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국정원이 도청 작업이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도청 작업은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인) 2002년 3월까지 진행됐다”고 밝히자, 당시 박 대표는 “현재는 도청이 행해지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누가 알 수 있겠느냐. (국정원이) 2002년 3월 이후(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도청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려면 국민이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며 정부와 국정원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등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또 지난해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선 대국민 사과를 한 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둔 대통령으로선 악재가 터진 셈”이라며 “대통령이 의혹 해소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벌여 의혹을 털어내야 이후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정 김경욱 기자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