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일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은 코로나19 탓에 광화문 광장(2019년)이나 서대문역 사공원(2018년)이 아닌 청와대에서 가까운 배화여고에서 소규모로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전쟁의 참화와 외환위기가 덮쳐온 1998년에도, 지난 100년간 우리는 단 한번도 빠짐없이 3·1 독립운동을 기념하면서 단결의 큰 힘을 되새겼다. 매년 3월1일, 만세의 함성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 오늘의 위기도 온 국민이 반드시 극복해낼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속에 맞은 3·1절 101돌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줄곧 강조한 것은 단합된 힘으로 국난을 극복한 우리 민족의 저력이었다. 문 대통령은 현대사의 위기 때마다 국민의 단결을 일깨운 원천이 3·1운동이었음을 상기시킨 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지금의 위기도 넘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각계의 국민들을 향해선 고마움의 뜻을 거듭 전했다. 문 대통령은 우한 교민을 맞아준 지역민과 임대료를 낮춘 임대인,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두루 거론한 뒤 “깊은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함께’와 ‘극복’이란 단어를 각각 12차례와 8차례나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민족이 3·1운동 때 단합된 행동을 통해 독립에 이르렀듯이 그런 저력으로 코로나19 사태도 함께 극복해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는 사실도 깜짝 공개했다.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스탈린 정부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돼 크질오르다에서 숨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독립유공자인 계봉우, 황운정 지사의 유해를 봉환하면서 홍 장군 유해 봉환도 추진했지만 1년이 지난 뒤에야 성사됐다.
일본을 향해서는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되 과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일본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한 뒤 “역사를 거울삼아 함께 손잡는 것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고 있지만, 두 나라가 나란히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고려해 메시지를 절제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 메시지도 보건 분야 공동협력 제안 정도에 그쳤다. 북-미, 남북 대화가 장기간 중단된 현실과 정부가 직면한 코로나19 사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념식은 코로나19 사태 탓에 배화여고에서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규모로 열렸다. 참석자들은 행사장 입구에서 발열 검사와 문진을 마친 뒤 입장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대응 중인 정세균 총리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불참했다.
행사에서는 영화 <기생충> 번역가 달시 파켓과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후손 최 일리야 세르게예비치가 각각 영어와 러시아어로 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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