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2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 복은 없는 것 같다. 지난해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느닷없는 수출규제 조처가 휴가길을 가로막더니, 올해는 기록적인 장마와 중부지방 폭우가 발목을 잡았다.
여름휴가는 사라졌지만, 고민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집권 후반기를 어떻게 운용할지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한다. 내년 5월 정도까지를 ‘대통령의 시간’으로 본다. 뒤부터는 각 정당의 대선후보 당내 경선이 시작되는 ‘후보의 시간’이다. 주도권을 쥐고 국정을 운영할 시간은 1년이 채 안 남은 것이다.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문제가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파동 탓에 허물어진 청와대 기강과 조직을 다잡는 일이 발등의 불이 됐다. 지난해 말 노영민 비서실장의 청와대 참모진 다주택 문제 해소 ‘강권’으로 시작된 ‘자중지란’은 여덟달 만에 노 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5명의 일괄 사의 표명에 이르렀다. 그사이 청와대 리더십은 만신창이가 됐다. 노 실장 자신부터 서울 강남과 충북 청주 주택 처분을 두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게도 구럭도 잃고 말았다. 청와대가 스스로 정부 부동산 대책을 우습게 만든다는 조롱이 이어졌다.
김조원 민정수석이 노 실장의 전철을 밟았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 두채를 지녔지만, 청와대 방침에도 처분을 미뤘던 그가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잠실동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가 거둬들였다. 청와대 처분 권고 기한이 이달 말까지이고, 그사이 거래를 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민정수석이라는 자리가 부동산 거래가를 ‘밀당’할 만큼 가벼운 자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운 처신이었다. 충분한 내부 여론 수렴 없이 나온 노 실장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여긴 것으로 알려진 그가 엇비슷한 경로를 밟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청와대를 향하는 시선에는 냉소가 짙어지고 있다. 차가운 냉소는 뜨거운 분노보다 무섭다. 분노 속에서는 소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만, 냉소와 조롱 속에서는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반인 2018년 2월 ‘춘풍추상’(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이란 글이 적힌 액자를 비서동에 나눠 줬다. 하반기 구상에는 여론에 무뎌지고, 자신에게 관대해진 주변을 다잡을 고민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야당과 어떤 협치를 할 것인지도 정리해야 한다. 176석의 거대 여당은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했던 ‘속도감 있는 개혁’을 추진할 든든한 자원이다. 그러나 103석의 미래통합당도 비록 법안 처리엔 판판이 깨질지 몰라도 여론을 움직이기엔 부족함이 없다. 총선 석달 만에 어금버금해진 여야 지지율은 이를 방증한다.
대외적으로는 북한 관계 해법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돌파구를 여는 일을 역사적 소명으로 여긴다. 유례없는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성과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한껏 밀어 올렸으나 다시 떨어져 내린 시시포스의 바위와 같은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안보 진용을 싹 바꿨다. 반드시 임기 안에 다시 남북관계 반전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인사다. 미국 대선이 석달 앞이라 불확실성이 크고, 문 대통령의 임기도 후반기로 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19가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있음을 고려하면 상황은 녹록잖아 보인다. 그러나 남북이 함께 닥친 기록적인 장마와 호우 피해는 인도주의 차원의 교류 필요성을 높일 수 있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셈이다.
1년 넘게 이어지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문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여부도 정리해야 할 숙제다. 청와대는 한·미·일 공조 강화를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압박 탓에 지난해 11월 종료 6시간을 앞두고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조건으로 내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국가 자격 복원, 수출규제 철회’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연장할 명분이 마땅찮은 것이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석달 전(8월24일)에 연장 여부를 일본에 통보해야 한다는 기존 규정은 의미가 없다는 태도다. 지난해 이미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를 즉각 실행할 수 있다’고 이미 공지했기 때문에 24일이란 날짜에 얽매일 문제는 아니라고 여긴다. 지소미아는 일본과의 문제이지만 실제론 미국과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이 문제를 푸는 데 문 대통령의 ‘협상가’ 자질이 필요해 보인다.
성연철 정치부 기자 sychee@hani.co.kr